[몰락, Der Untergang] - 무장친위대와 국방군의 차이점
전쟁론의 저자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정치의 연장선상에 전쟁이 있다”
”War is not merely a political act but a real political instrument, a continuation of political intercourse, a carrying out of the same by other mean”
1800년대에 벌써부터 '총력전'의 개념과 국가 단위의 경제 산업을 모두 총괄하는 전쟁과 정치의 개념을 일찍이 발상을 해내고 전쟁과 정치는 필수불가결한 관계임을 강조하였다.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의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진작에 인지하고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자기와 나치당이 가진 정치 철학과 그에 따라 했던 악행들이 전쟁에서 패배하였을 때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똑똑히 인지하고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에게는 전쟁에서의 승리가 너무나도 중요하였던 것이다.
독일의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영토 확장이 불가피하였고,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의 인종적 정치적인 이념들을 위해서는 공산주의나 유태인 등 제거해야 될 대상들이 너무 많았다. 아돌프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독일의 재무장을 선언하면서 우익과 군부의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지지를 바탕으로 아돌프 히틀러는 전쟁을 위한 별 방해 없이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돌프 히틀러는 군부가 너무 힘이 세지는 것을 견제하면서도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군대가 필요함을 느꼈고, 준군사조직인 무장 친위대를 창설하기에 이른다. 독일과 독일의 국방군 또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지만 무장 친위대는 아돌프 히틀러와 함께 더욱 처참한 몰락을 하고 만다.
https://www.youtube.com/@historyatwar8043
독일 군부는 해군 공군 육군으로 크게 3가지로 구분되었다. 독일 해군(크릭스마리네, Kriegsmarine 전쟁 해군으로 직역된다) 공군(루프트바페, Luftwaffe는 공군으로 직역되지만 세계 2차대전의 독일 공군을 특정하는 고유명사처럼 사용 되고 있다) 육군(헤어 Heer) 3개 조직은 명목상 국방군 총 사령부(베어마흐트와 웨어마흐트과의 발음 중간이며, 정식 명칭은 Oberkommando der Wehrmacht 짧게는 OKW로 불린다.)산하에 각 군대별 최고 사령부가 조직되도록 편성 되었다.
1935년 아돌프 히틀러가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한 이후 전쟁 성 정부 기관을 대신하여 국방군 최고 사령부를 창설하였다. 이 OKW, Wermacht 국방군 총사령부는 훗날 1935년에서 1945 사이의 독일 제3제국의 군대를 통칭하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된다.
국방군 최고사령부 (The Wehrmacht, OKW (Oberkommando der Wehrmacht))는 3군의 전략 조율, 참모행정, 군수품의 보급과 생상 그리고 독일 본토에 대한 모든 방어 계획을 총괄할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하지만 국방군 최고 사령부(OKW)는 실질적인 통합 지휘 체계를 갖추기 보다는 명목상 존재하는 조직이 되었다.
심지어는 육군 최고 사령부 (Oberkommando des Heeres, OKH)와의 협의를 통하여 대다수의 독일군이 포진한 동부 전선에 대한 작전권은 육군 최고사령부(OKH)가 가지고, 국방군 최고 사령부(OKW)는 서부전선에 대한 작전권을 일임하는 협의를 하기도 하였다.[1]
나치당의 초창기 주요 준군사 조직은 처음 돌격대(Sturmabteilung, SA) 였다. 그러나 아돌프 히틀러의 직접적으로 따르는 친위대(SS, Schutzstaffel )의 주도하에 ‘장검의 밤' 사건 동안 히틀러는 자신과 의견 충돌이 있던 에른스트 룀 돌격대 수장을 포함한 SA의 주요 인물들을 제거하였다.
이후 SA를 성공적으로 숙청한 친위대(SS)가 나치당의 주요 준군사 조직이 되었다. SS(Schutzstaffel, 직역하면 친위대)의 수장인 하인리히 히믈러 (Heinrich Himmler)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고자 SS의 조직을 확장하고 싶어하였으며,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의 군부를 직접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군사 단체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아돌프 히틀러는 SS(슈츠스타펠과 친위대 혼용 예정)의 조직을 변화시켰다. 기존의 조직은 Algemeine SS(일반 친위대)로 분류를 시켰으며 Waffen SS(무장 친위대)를 창설하여 이들은 군사 작전을 수행하는 조직으로 개편하였다.
Waffen SS는 문자 그대로 무장/전투 친위대를 뜻하였고, 무장 친위대는 아돌프 히틀러의 처참한 몰락의 끝까지 나치당과 독일 제 3제국의 '적'들에게 저항하였다.
독일 제3제국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독일 국방군도 큰 책임의 소지가 있었으나 이러한 나치당과 히틀러 직속 명령을 받던 무장친위대의 정치적 특성상 연합군과 소련군들은 무장친위대에 대해 독일 국방군보다 적대적이었다.
무장 친위대는 국방군과의 협력과 함께 수많은 군사 작전에 참여했으며 인종 문제, 반공주의 등 나치당의 정치적 목표에 특화된 작전에 많이 투입되었다.
아돌프 히틀러가 직접 명령을 하거나 히틀러가 직접 지휘권을 위임 한 인물만이 무장 친위대를 지휘할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도 무장친위대는 국방군의 소속이 아니었지만 마치 국방군의 4번째 군대처럼 이 히틀러의 광전사들은 다방면에서 작전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히틀러의 사병 조직이었던 무장친위대는 독일의 패배 이후 정규 군으로서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공식적으로 ‘범죄 집단’으로서의 심판을 받았다.
무장 친위대과 국방군의 별개의 조직으로서 계급 체계나 전투복 등 모든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무장친위대는 특이하게도 일반적인 군조직보다도 덜 권위적이고, 장교 부사관이나 병사의 호칭이 간소한 등 독특한 명령 체계를 가졌다. 무장 친위대의 계급 체계 또 일반 친위대와도 공유를 하였다.
무장친위대는 국방군과 달리 나치당과 히틀러의 사병조직으로서 정치적인 성향 또한 섞인 조직이기에 국방군과 무장친위대를 아는 것이 세계 2차대전에서의 사건들을 이해함에 있어서 도움이 된다. 다음은 독일 국방군과 무장 친위대의 두드러지는 차이점이다.
1. 무장친위대의 전투모는 토텐코프, 즉 죽음의 해골 (Totenkopf)가 새겨져 있으며 일반 군부는 독일 국방군 엠블럼이 새겨져 있었다. 일반 친위대 소속의 인물들 또한 토텐코프가 새겨진 모자를 착용하였다.
'Totenkopf' 토텐코프는 특히나 강제 수용소에서 복무를 하던 사람들과 히틀러의 가장 악명 높은 광신자들의 상징이었다. 수용소 출신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탄생한 제 3 무장친위사단 또한 토텐코프라는 이름을 히틀러에게 부여받았고 이들은 광적인 전투 방식과 높은 사상률 그리고 악독한 전쟁범죄로 악명 높았다.
2. 국방군과 무장친위대는 계급 체계가 달랐으며 이는 전투복 어깨 견장이나 목덜미의 칼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무장 친위대는 특유의 SS 친위대 마크와 직사각형 또는 떡갈나무 잎으로 표시된 계급 체계를 가진 반면 국방군은 장교 부사관 병사 표시가 별도로 존재하였다.
3. 무장친위대와 국방군의 전투복에 부착되는 독수리와 슈와스티카(하켄크로이츠) 엠블럼이 붙는 부위가 달랐다. 국방군의 경우 이 엠블럼이 전투복의 우측 가슴팍에 부착되는 반면 무장친위대나 친위대는 모두 왼쪽 소매에 이 엠블럼이 새겨져 있다.
아돌프 히틀러 또한 역사 기록물에서 이 독수리와 하켄크로이츠 엠블럼이 대부분 왼쪽 팔에 붙어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4. 눈엔 보이지 않지만. 무장친위대원은 겨드랑이 밑에 혈액형 문신을 새겼다. 이런 문신을 새기게 되는 루머에 의하면 인식표가 있더라도 무장친위대원들은 워낙 전투에서 공격적이다 보니 신체 부위가 날라가는 심각한 부상이 많아 겨드랑이 밑에 혈액형을 문신 새겨야 될 필요성이 생겼다고 한다. 이는 전후 무장 친위대에 복무한 이들을 식별하는 표시가 되기도 하였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주요 전투는 무장친위대원들과 발생하지만 밀러 대위(톰 행크스)를 죽인 일명 ‘스팀보트 윌리’는 국방군 소속이며, ‘스탠리 멜리시를 죽이고 업햄을 살리는 인물은 무장친위대원이다. 이 둘이 모두 민머리로 나와서 동일 인물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소속 조차도 다른 두 명의 인물들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여러 대화 정황상 이들이 상대한 이들은 제 2SS 기갑사단 다스 라이히(2nd SS panzer division Das Reich)로 추정이 된다.
무장친위대는 전쟁 후 열린 뉘른베르크 국제 군사 재판소에서 군인이 아닌 '범죄 조직'로 정의가 되었다. 이들은 국방군들의 퇴역 군인들이 받을 수 있었던 여러 혜택을 전혀 받을 수가 없었다. [2] 국방군이 책임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장 친위대는 인류에 대한 범죄와 전쟁 범죄에 상대적으로 정치적 조직의 특성상 더 많이 관여가 되었고, 공식적으로도 친위대의 소속이었기에 이들은 범죄 조직으로 취급되었다.
[3] 제 2차세계대전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임에 있어서 무장친위대와 독일 국방군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이들의 조직적 특성을 이해한다면 더욱 정보를 받아들이기가 쉽다.
스타워즈의 영화 속 스톰 트루퍼 군단 또한 이러한 무장 친위대로부터 유래되었다. 스톰트루퍼들 은하제국 육군과는 별개의 조직으로 쉬브 펠퍼틴 황제나 다스 베이더의 직속 명령만 받는 무장 조직이다. [4]
무장친위대와 독일 국방군의 차이점을 이해하면 왜 아돌프 히틀러가 일부 부하들에게 더욱 감정이입을 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예시로 아돌프 히틀러의 가장 큰 분노를 불러들인 펠릭스 슈타이너(Felix Steiner)은 무장 친위대의 최고위 간부였기에 아돌프 히틀러는 슈타이너가 자신의 명령을 거부 한 이상 정말로 전쟁에 패배하였음을 느끼고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또한, 히틀러가 자신의 애인 에바 브라운의 처형인 헤르만 페겔라인(Herman Fegelein)의 가차 없는 총살형을 명령한 이유 또한 페겔라인이 제 8SS 기병사단 플로리안 가이어(8th SS cavalry division Florian Geyer)의 지휘관까지 역임 했던 무장 친위대 고위 간부였고, 친위대의 수장 히믈러가 배신을 하고 히믈러의 연락관이었던 페겔라인 또한 배신을 한 것이라 생각 하였을 거기에 히틀러는 더욱 큰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히틀러가 베를린 방어 총 사령관은 헬무트 바이들링 국방군 장군을 임명하더라도 총통 벙커 즉, 자신의 최후의 방어선은 자기를 오랫동안 호위해온 빌헬름 뭉케(Wilhelm Mohnke)를 임명한 것도 그가 자신의 직속 무장 친위대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1] “Wehrmacht.” Encyclopædia Britannica, Encyclopædia Britannica, Inc., https://www.britannica.com/topic/Wehrmacht#ref1266118.
[2] “The SS (Schutzstaffel): The Waffen-SS.” Waffen-SS, https://www.jewishvirtuallibrary.org/waffen-ss.
[3]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https://encyclopedia.ushmm.org/content/en/article/the-role-of-the-military.
[4] The Real History That Inspired 'Star Wars' - History. https://www.history.com/news/the-real-history-that-inspired-star-w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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