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디에이터]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친아들 콤모두스의 로마 황제 즉위, 실제 역사 속 콤모두스의 인생, 콤모두스와 콜로세움의 검투사와 글래디에이터들, 콤모두스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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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디에이터]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친아들 콤모두스의 로마 황제 즉위, 실제 역사 속 콤모두스의 인생, 콤모두스와 콜로세움의 검투사와 글래디에이터들, 콤모두스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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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모두스의 승전식과 개선식 그리고 게르마니아 전역과 마르코만니 전쟁의 종식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콤모두스는 게르마니아 전역에 참전하지 않고 승전식과 개선식을 열며 로마에 입성한다. 하지만 실제 역사 속에선 전투를 통해 승리하여 로마 제국군이 게르마니아를 평정한 것이 아니다.

실제 역사에선 콤모두스가 로마군 고위 장교들의 반대에 불구하고 콤모두스으 마르코만니 족과 콰디 족 등 게르마니아 부족들에게 다뉴브 강 일대의 로마 제국 북쪽 땅을 넘겨주고 평화 조약을 맺었다.

 

 

콤모두스는 그렇게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사수한 다뉴브강 일대 땅을 내어 주고 옛 로마 제국의 국경으로 후퇴를 한다.

그래서 콤모두스는 마르코만니 전쟁을 종식 시켰다는 명분으로 실제로도 로마에 입성할 때 개선식을 열어 로마 황궁에 입성한다.

 

 

콤모두스가 게르마니아 지역을 포기하고 평화 조약을 맺은 것이 어리석어 보였어도 역사가들은 오히려 이를 현명한 판단이라고 평가하였다.

당시 로마 제국은 안토닌 대역병 등으로 인구 1/3이 죽었고 많은 재난을 겪으면서 국고가 비어서 역사가들은 로마 제국이 끝까지 다뉴브 강 일대를 사수 가능하리라 평가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콤모두스가 북쪽 땅을 포기한 덕분에 힘을 그나마 비축 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물론 역사가들은 콤모두스가 이런 미래를 염두에 두고 계산을 하고 평화조약을 맺었는지 아니면 그냥 빨리 로마로 돌아가고 싶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힌 바가 없다.

 

 

로마 제국 황제와 의회의 관계 설명

엄밀히 말하면 로마 제국의 황제는 ‘1등 시민’ ‘1호 시민'격인 프린셉스(프린켑스, princeps)라는 신분으로 로마 시민의 자격으로 로마 시민의 지원을 받아 즉위하는 자리였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의원인 그라쿠스가 모든 의원들이 보는 앞에서 황제 콤모두스를 모욕하거나 경멸 해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동양권 국가에서의 황제와 다르게 로마 황제에게는 절대 권력이 없었다.

 

 

로마의 의회(Senatus Romanus)는 로마 황제와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로마 황제는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 적합함을 로마 시민들에게 증명도 해야 했던 셈이다.

콤모두스는 다른 공로 없이 계속해서 재정을 낭비해서라도 검투사 경기들을 무리하게 열어 로마 시민들의 환심을 사서 일종의 포퓰리즘 정책을 시행 하였고 대중들의 지지를 받고자 하였다.

 

 

실제 역사 속 로마 제국의 황제로서의 콤모두스의 통치와 행동들

실제 역사 속에서도 콤모두스는 로마의 폭군 중 한 명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콤모두스는 처음 로마를 다스릴 때에는 꽤나 괜찮게 로마 제국을 통치하여 마르코만니 전쟁이나 안토닌 역병 등을 겪던 로마가 안정화 된다.

하지만 콤모두스의 친누나 루실라(루킬라, 영화는 고증을 안 했다)가 권력을 탐내 동생 콤모두스를 콜로세움에서 암살시도 하다 실패한다.

 

 

루실라의 동생 콤모두스 암살은 실패하지만 콤모두스는 편집증적 증세와 불안 증세를 보이며 미쳐 가고 아예 국정을 내팽개 쳐 버린다.

콤모두스가 루실라의 암살 시도에 모든 국정을 놓고 검투사 경기에나 집중하여 로마 제국의 재정을 탕진하면서 의회의 불만을 사고 권력을 노린 세력들의 다툼도 이어진다.

그렇게 콤모두스의 방관으로 폭정이 일어난다. 황실 근위대 프레토리안 가드의 대장 페렌니스(Perennis)는 권력을 휘두르다 반역 모의가 발각 되어 처형 된다.

 

 

또 다른 프리토리아 가드 대장인 클레안데르(Cleander)가 그 뒤를 이어 무력을 세워 매관매직이나 부정부패를 저지른다.

클레안데르의 폭정에 로마 대중들의 불만이 쌓이자 콤모두스는 폭동과 백성들의 봉기가 두려워 클레안데르도 사형 시켜버린다.

끝없는 권력 암투가 이어지고 콤모두스는 결국 자신에게 레슬링을 가르쳐주던 교관에게 암살당한다. 콤모두스 암살 이후 로마 제국은 약 18년간 내전을 겪고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가 즉위하고 나서야 로마 제국이 안정을 되찾는다.

 

 

실제 역사 속 콤모두스의 폭정에 로마 의회가 대응하지 못한 이유

운이 좋게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통치하던 시절과는 달리 콤모두스가 통치하던 로마 제국 당시 많은 자연 재해나 외세의 침공을 받지는 않았다.

코모두스가 최초로 로마 황제로 통치하던 몇 년은 꽤나 괜찮아서 로마 의회에서는 콤모두스가 슬슬 날뛰더라도 돌아올 것이란 희망을 가져서 큰 제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 누나 루실라의 콜로세움 암살 시도 등의 사건에서 정신적으로 무너진 콤모두스는 끝끝내 정신 차리는데 실패하고 만다.

콤모두스의 폭정 이후 로마 제국은 1년에 다섯명의 황제가 나오는 다섯 황제의 해를 겪는 등 크게 쇠락하여 위기를 맞이한다.

 

 

콤모두스가 무수히 많은 검투사 경기를 콜로세움에서 개최한 이유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콤모두스는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기리고 추모한다는 명분으로 검투사 경기들을 개최한다.

로마의 의원들은 탐탁치 않지만 전공이 없는 콤모두스가 대중들의 환심을 사려는 전략 자체는 영악하고 똑똑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실제 역사 속에서는 콤모두스는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기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검투사 경기를 좋아해서 연속적으로 개최했다.

콤모두스 자체가 무력은 엄청 났지만 소심하고 소극적인 성격을 가졌는데 콜로세움에서 직접 검투사로 나서서 관중들의 열광을 받는 것은 즐겼다.

그렇게 실제 역사에서는 콤모두스가 콜로세움에서 너무 잦은 검투사 경기를 열면서도 로마 제국을 통치 하지 않고 방치하여 로마 제국의 재정을 탕진하고 정치계도 큰 혼란에 빠진다.

 

 

콤모두스의 실제 전투력과 검투사로서의 자질실제로 콜로세움의 검투사 경기에 참가한 콤모두스

실제 역사에서도 로마 황제들이 직접 콜로세움의 검투사 경기에 참여하였으며 콤모두스는 자주 검투사 경기에 직접 검투사로 참가 하였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콤모두스는 미리 합을 맞추고 미리 짜고 쇼를 하는 검투사로서의 실력이 없는 것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실제 역사 속에선 콤모두스는 과장 없이 엄청난 무예 실력과 힘을 가진 장사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로마 황제이니 안전을 위해서 어느 정도 콤모두스는 미리 합을 맞춰서 검투사 경기를 치르곤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콤모두스는 충분히 검투사들 중에서도 매우 강한 용사였다. 콤모두스는 맹수와 동물들을 제압하는 비스티아리(베스티아리) 검투사로는 역대들이라고 평가 받기도 하였다.

 

 

콤모두스는 직접 자기의 손으로 코끼리, 호랑이, 하마나 곰과 같은 동물들을 제압하였고 기록 중에는 하루에는 곰 100마리를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괴력을 갖춘 콤모두스는 역대급 베스티아리로 평가 받아서 여러 암살 모의 때 곤욕이었다. 실제 콤모두스를 암살 하기 위해서 레슬링 스파링 교관을 섭외 하였는데 콤모두스를 살해한 레슬링 교관은 콤모두스의 반격이 두려워 미리 독약을 풀어서 약화 시킨 뒤 암살 해야 했다.

 

 

실제 역사 속 콤모두스의 불안정한 정신상태

실제 역사에서도 콤모두스는 관심과 집중을 갈구하지만 소심하고 열등감이 많았다고 한다. 처음엔 콤모두스도 정치도 나름 잘 했으나 점점 로마 제국 내사에 신경 쓰기 보다는 콜로세움에 직접 검투사로 활약하며 관중들의 열광을 받는 것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콤모두스가 자신의 누나 루실라(루킬라)를 탐낸 기록은 없다. 하지만 자신의 누나 루실라가 반란을 꾸미고 콤모두스를 암살 시도 하였으나 실패한 이후부터 콤모두스는 급격하게 정신이 불안정 해졌다는 기록이 있다.

 

 

원래부터 소극적이고 소심한 콤모두스는 정사를 아예 내팽개치고 불안과 편집증 증세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갈구하여 콤모두스는 검투사 경기에 더욱 많이 나서고 로마 제국을 망쳐가고 있었다.

콤모두스의 우울증 비슷한 정신적 불안 증세와 패배주의, 공포와 신경질적 편집증은 나아지지 않고 콤모두스는 결국 후에 암살 되고 로마 제국은 큰 혼란의 시기를 겪는다.

 

 

콤모두스와 루실라의 관계 - 실제로도 콤모두스는 누나 루실라를 탐하였는지 여부

실제 역사 속에선 콤모두스가 자신의 누나 루실라에게 근친을 요구하거나 친누나를 사랑한 기록은 없고 영화적 설정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콤모두스가 루실라의 목숨을 위협해서 루실라가 반란을 꾸민 것이 아니라 루실라 자체가 권력 욕구가 많았다.

 

 

루실라는 여성이라 정치에 관여를 할 수가 없었는데 권력에 대한 욕구가 있어 세력을 모으고 로마 제국 내정보다는 검투사 경기에 집중하는 콤모두스를 콜로세움에서 암살 시도 하였다.

콤모두스의 콜로세움 암실 시도도 실패하고 루실라가 주도한 반란 쿠데타도 실패하였다. 콤모두스는 살아남은 뒤 엄청난 정신적 충격에 빠지고, 33세의 나이에 친누나 루실라는 암살 되어 처형 되었다.

 

 

다섯 황제의 해 그리고 콤모두스 사망 이후 로마 제국의 내전

콤모두스가 자신의 레슬링 스파링 교관에게 192년 도에 암살당한 이후 18년간 로마 제국은 끊임없는 내전에 휩싸인다.

콤모두스가 죽은 192년도 한 해에 무려 다섯 명의 로마 황제가 등장하면서 192년도는 다섯 황제의 해라고 불린다.

 

 

192년도 다섯 황제의 해에는 페르티낙스(Pertinax), 디디우스 율리아누스(Didius Julianus), 페스켄니우스 니게르(Pescennius Niger), 클로디우스 알비누스(Clodius Albinus) 그리고 셉티무스 세베루스(Septimus Severus)가 있었다.

셉티무스 세베루스와 클로디우스 알비누스가 내넌에서 동맹하여 로마 제국을 193년도부터 공동 통치한다. 하지만 또 둘은 내전을 하게 되고 셉티무스 세비루스가 최종적으로 승리하여 로마 제국의 세베루스 왕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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