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역사 속 마르코만니 전쟁과 게르마니아 전투 전역의 전개
실제 역사 속에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2차 마르코만니 전쟁을 끝 보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이어 로마 황제가 된 콤모두스는 여러 장군들의 반대에 불구하고 전쟁을 빨리 끝내고자 다뉴브 강 일대를 마르코만니 족을 포함한 게르만 족들에게 넘겨주어 전쟁을 종식 시킨다.
후대에 콤모두스가 게으르고 그냥 로마로 빨리 둘아가고 싶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하지만 당시 로마 제국은 자연 재해와 안토닌 대역병과 같은 악재로 국력이 급 쇠약해진 상태라 콤모두스의 선택이 어쩔 수 없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코모두스의 마르쿠스 아우렐우스의 살해와 실제 역사 속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죽음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는 콤모두스는 자신에게 황제의 자리를 주지 않고 막시무스에게 주어 로마 공화국을 재편 하려는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분노한다.
항상 애정을 갈구하고 열등감에 찌들었던 콤모두스는 결국 권력 욕구 때문에 애증의 관계였던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살해한다. 코모두스는 결국 아버지에게 인정을 한 번도 받지 못해 보고 아버지를 목 졸라 죽인다. 하지만 이 모든 전개는 가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병환으로 죽었고(안토닌 대역병으로 추정) 그리고 공화국을 복구할 시도도 안 했다.
그리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오히려 다른 로마 황제들과 달리 친아들 콤모두스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었고 이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가장 큰 실수로 평가 받는다.
한낱 장군인 막시무스에게 로마 황제의 자리를 승계 할 수 있었던 이유
왕권이나 황제의 지위는 흔히 혈연으로 승계 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로마 제국은 혈통으로 황제의 자리가 승계 되지 않았다.
오히려 로마 제국에서 단순히 혈족이라는 이유로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비정상적이었다. 로마 황제들은 어렸을 때 부터 유망한 아이들을 입양하여 지속적인 후계자 수업을 통해 육성 한 뒤 양아들들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스 황제 자신도 입양 되어 철저한 훈련과 육성을 통해 양아버지에게서 로마 황제의 자리를 받았다. 혈족이라는 이유로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그래서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혈연이 없는 막시무스에게 로마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고자 시도 한 것은 오히려 이상한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 속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기존 관습을 깨고 친 아들 콤모두스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어 엄청난 오점을 남긴다.
퀸투스가 막시무스를 배신하고 근위대장 프레토리안 가드의 대장이 된 이유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막시무스의 동료인 퀸투스 또한 하나의 군단을 이끄는 군단장(레게이트 레가투스)로 추측 된다.
막시무스는 군단장인 동시에 총 사령관 레가투스 아우구스티 프로 프레아토레(Legatus Augusti Pro Praetore)직으로 자신의 군단과 여러 군단을 합친 로마 제국 북부군의 총사령관이었다.
퀸투스는 막시무스의 자리를 탐냈다기 보다는 군인으로서 굳이 콤모두스를 배신할 동기가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프리토리아 가드 즉 황실 근위대를 제외한 모든 로마 군단들은 이탈리아 반도 밖의 땅에 배치 되어 있었다. 즉 프리토리아 가드가 아니면 몇 십년씩 고향 땅에 있지 못하게 되는 격이다.
그래서 퀸투스는 이탈리아 반도에 잔류 할 수 있어서 콤모두스에게 충성하는 대가로 이탈리아 반도에 남을 수 있는 프레토리안 가드의 대장직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만약 퀸투스가 정말 권력을 탐냈다면 막시무스도 숙청하고 콤모두스마저도 숙청 해버려 로마 제국 북부군 전체를 대동하여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었지만 그러진 않았다. 그
래서 퀸투스는 적당히 고향에 있으면서도 권력 투쟁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어서 콤모두스에게 협조하고 막시무스를 숙청 시도 한다.
퀸투스는 막시무스를 배신한 대가로 황실 근위대 프레토리안 가드의 대장(prefect)가 된다. (프레토리안 가드 지휘 체계도 복잡하여 완전 총대장은 아닌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고증 따위 없는 영화다)
콤모두스가 막시무스를 굳이 숙청 해야 했던 이유
로마의 황제는 물론 많은 권력을 가졌지만 이때 당시만 해도 중앙 집권화 되거나 절대왕정과 같은 절대권력을 가지진 않았다. 그래서 로마의 역사 동안 수많은 반란과 내전들이 일어났다. (영토도 넓고 등등 중앙집권화가 안 되어서 일어났단 의미는 아니다)
펠릭스 군단 즉 로마 제4군단은 막시무스 직속 부대였고 로마제국의 북부 군이 막시무스에게 충성을 하였기에 콤모두스에게 매우 큰 위협이었다.
만약 막시무스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복수를 빌미로 삼으면 콤모두스는 살아남을 확률 희박했다. 그래서 콤모두스는 막시무스가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을 것을 알자 즉시 막시무스의 제거와 숙청에 나선다.
콤모두스가 막시무스의 가족들까지 살해한 이유 - 연좌제
막시무스가 콤모두스에게 충성하기를 거부하자 콤모두스는 막시무스의 가족까지 연좌제로 살해한다. 하지만 서양권 국가에서는 가족 단위의 연좌제는 없었고 이는 그저 콤모두스의 개인 행동이다.
연대 책임이나 연좌제와 같은 개념은 서양권에서 옅었고 이러한 제도들른 아시아권 문화에서 주로 발견 되었다. 로마나 서구권 문화에서 한 사람의 죄목을 이유로 가족들 까지 책임 지는 법은 없었다.
오히려 로마의 법전 중 하나에서는 (코덱스 베투스, 구약성경일수도 있지만 확실치 않음 Codex Vetus) “Delicta parentum liberis non nocent” 이라고 적혀 있으며 이는 부모의 죄로 자식들을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서구권 문화가 우월하다는 의미는 아니고 멸국이나 국가 운명 전체를 건 총력전이나 가족까지 포함한 군신의 관계에 대한 개념은 서구권 국가에서는 약했을 뿐이다.
콤모두스의 즉위식과 로마로의 개선식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콤모두스는 자신의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살해하고 막시무스도 죽일 뻔하고 게르마니아 전역의 영웅으로 개선식을 열며 로마로 돌아온다.
콤모두스는 승리 장군도 아니면서 개선식을 열어 황제 즉위식도 열면서 의회의 의원들에게 멸시 받는다.
실제 역사에서는 콤모두스는 다뉴브 강 일대의 땅을 콰디족과 마르코만니 족 등 게르마니아 부족들에게 넘겨주고 평화 조약을 맺었다. 그렇게 콤모두스는 마르코만니 전쟁을 끝낸 공로로 개선식을 열며 실제로 로마에 귀환하였다.
막시무스의 노예 전락 - 검투사가 되어 가는 길
막시무스가 황실 근위대 프리토리아 가드들을 제압하고 자신의 가족을 찾아 부상 당한 채 히스파니아(스페인)으로 향한다.
하지만 막시무스는 십자가에 매달려 산 채로 죽은 아내와 아들을 보고 절규한다. (십자가 형벌은 매우 고통스러운 고문이라서 로마에선 대역 죄인들을 십자가 형벌에 처한다)
막시무스는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묻어준 뒤 상처가 곪아서 정신을 못 차리고 쓰러져 버린다. 막시무스가 정신 차렸을 무렵 주바라는 흑인 사냥꾼이 막시무스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고 둘은 북 아프리카의 마우레타니아(Mauretania)속 주의 주카바르로 팔려 가고 있었다.
로마에서 노예가 되었던 이유들
해적질이나 납치, 전쟁 포로나 노예에게서 출생하는 등의 이유로 로마에선 노예가 될 수 있었다. 막시무스는 전쟁포로는 아니었고 가족들의 죽음을 보고 쓰러졌을 때 노예 무역상들에게 납치당하여 노예가 되었다.
막시무스는 현재 북 아프리카의 알제리 밀라 지역인 주카바르 속주로 팔려간다. 흑인 사냥꾼 주바도 납치 당하여 카르타고 소금광산의 노예라는 거짓말로 팔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