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디에이터] – 로마 황실의 상징 색 보라색 티리언 퍼플, 로마 정치에 대한 개괄 - 로마 공화국과 로마 제국, 실제 역사 속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황제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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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디에이터] – 로마 황실의 상징 색 보라색 티리언 퍼플, 로마 정치에 대한 개괄 - 로마 공화국과 로마 제국, 실제 역사 속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황제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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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토리안 가드로마의 황실 근위대

프레토리아니 또는 프레토리안 가드는 로마 황제의 친위대이자 이탈리아 반도의 수비를 맡은 군대이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로마 황실 근위대 프레토리안 가드의 상징 색은 권력의 상징인 보라색으로 등장하지만 실제 역사에선 그렇지 않았다(정확히는 그만큼 티리언 퍼플을 생산하지 못했다).

프레토리안 가드는 군사 정보 기관이자 치안 및 경찰 업무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 로마 군대의 최정예 병력들이었다. 로마 황제들이 전선의 중요 전투지로 나갈 때 프레토리안 가드 부대들은 함께 출정하여 중요 전투의 선봉을 이끌었다.

 

프레토리언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신체적으로 강인하고 학구적으로 박식해야 했다. 이탈리아 반도 로마의 본국에 유일하게 배치된 군대인데다 워낙 강력하였기에 로마 황실 근위대 프레토리언 가드는 정치적 힘도 있었다.

특히나 코모두스 치하에 코모두스가 국정을 놓으면서 프레토리언 가드가 권력을 남용하기고 한다. 후에 권력 남용으로 프레토리안 가드는 없어진다.

 

 

보라색로마 황실과 귀족들의 상징이자 권력의 색

로마 제국에서는 보라색은 권위와 권력의 상징으로 로마 황실이나 귀족들과 고위 관료들만 보라색을 사용 하였다. 로마 시대 때 고위층에서 사용하던 보라색은 고유한 이름으로 티리언 퍼플 또는 임페리얼 퍼플이라 불린다.

보라색 염료는 로마에서 매우 희귀하고 구하기 어려운 데다가 보라색은 대대로 삶과 죽음의 상징으로 쓰여 권위의 상징으로서 사용 되었다.

 

 

로마 제국 당시 보라색 염료는 매우 생산하기 어려웠는데 이는 특정 바다 달팽이/고동/소라 에서만 생산 되었기 때문이다. 브란다리스 뿔고동/뿔소라 이라 불리는 종에서만 티리언 퍼플 보라색 염료가 생산 되었다.

(Bolinus brandaris) 브란다리스 뿔고동 또는 브란다리스 뮤렉스(Murex)를 포함한 무렉스 뿔소라/뿔고동 종들은 보라색을 띠는 브롬화 탄화수소 화합물들을 방어수단으로 분비한다.

 

 

로마인들은 계속해서 이 브란다리스 뿔고동이나 다른 뮤랙스 뿔소라들을 죽이지 않는 선에서 계속해서 찔러서 모은 보라색 브롬화 탄화수소 물질을 모아서 티리언 퍼플 보라색 염료를 만들었다. 이 과정은 상당한 시간과 노동력을 소모하여 보라색은 로마 시대 때 매우 희귀했다.

 

 

로마의 정치제도에 대한 간략 설명공화국과 민주주의(귀족 민주주의)

로마의 2000년 가까이 되는 역사 동안 로마는 다양한 정치 체계를 가져왔다. 로마는 처음에는 왕국으로 시작하여 공화국이 되고, 프린케파투스(제국 체계인데 명목상 황제는 제1시민)그리고 제국 체계를 갖추게 된다. 이후 로마 제국은 분열을 거듭하며 나중에는 명목상으로만 제국으로 남는다.

로마 공화국 또는 레스 퍼블리카 로마나(Res Publica Romana)는 현대 시대의 공화국이나 민주주의와는 다르며 콘술 즉 집정관이라 불리는 선출된 지도자가 이끄는 귀족 민주주의 체계였다 (aristocracy)

 

 

이후 로마는 호민관도 선출하는 삼두 정치 또는 삼인 집정부라 불리는 트리움비레이트 (Triumvirate)체계로 권력의 분산을 일으켰다. 호민관 또는 트리뷴(tribunate)은 귀족이 아닌 로마 시민들에게서 선출하였고 로마 의회(Senatus Romanus)와 함께 집정관(콘술, Consul)과 권력의 분립을 하였다.

하지만 로마의 민주주의와 공화국 체제는 현대의 평등한 민주주의와 공화국 체계와 다르다. 권력의 분산 또한 잘 되지 않았으며 집정관에게 권력과 힘이 집중 되었다.

로마의 시민의 권리는 매우 제한 되었고 민주주의는 평등이나 공정이 아닌 선택 받은 자들이나 귀족들만이 정치에 참여하는 체계였다.

 

 

로마 제국의 형성에 대한 간략한 역사 요약

줄리어스 시저 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 공화국 후기 집정관(콘술,consul)이 되어 초기 로마 제국 설립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우스 시저)는 현재의 벨기에와 프랑스 지역인 갈리아 지방, 현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위치한 히스파니아 지방을 정복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브리타니아(현재의 영국)지방을 공격하는 최초의 로마 지도자가 되기도 한다. (보통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보다는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우스를 최초 로마 황제로 인정한다).

하지만 집정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절대 권력은 반발심을 일으키고 정치적 분쟁을 일으키고 카티사르의 내전(Caesar’s Civil War 또는 Secundum Civile Bellum)이 방생하고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아들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우스(Augustus Octavius)은 안토니우스(마크 안토니 Mark Antony)의 세력을 악티움 해전(Actium)에서 승전한 뒤 로마 제국의 첫 황제로 즉위한다.

그렇게 유럽 역사 최초로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우스가 황제라는 직위를 가지고 로마 공화국을 로마 제국을 바꾼 뒤 로마 제국의 시대가 열린다.

 

 

로마의 정치 제도에 대한 간략 설명 - 제국 질서

로마 제국의 황제는 원수정, 프린키파투스(프린시파투스, principatus) 제도로 운영 되었으며 엄밀히 말하면 황제는 제1시민이라 불리는 프린켑스(프린셉스 princeps)이라는 지위를 가졌다.

프린켑스라는 지위는 명예직이지만 여전히 많은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의회 등이나 귀족들은 황제를 견제 할 수 있었다.

로마제국은 절대 왕정이나 완전 중앙집권화 되지 않았으며, 로마 제국의 황제 자리는 혈통으로 승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 제국의 황제가 중앙 집권화 되기 시작한 시점은 약 AD 300 시기부터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공화국 제도의 부활에 대해 전혀 생각 한 적 없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막시무스 장군에게 공화국의 부활을 맡긴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마커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공화국이나 민주주의의 부활을 꿈꾼 적이 없다.

로마 황제는 강력한 권력이 있었지만 절대 권력이나 완전 중앙집권화 되지 않았으며 로마 의회는 황제를 충분히 견제도 할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로마 황제의 지위 자체가 제1시민(프린셉, princeps)의 자격이었다.

 

 

또한 로마 공화국의 민주주의의 개념은 귀족 민주주의로 오늘 날 민주주의의 개념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이러한 설정들은 단순히 그냥 민주주의, 공화국의 부활과 분권화 등의 긍정적인 이미지만 생각하여 만들어졌으며 실제 역사와 매우 다르다.

 

 

친아들 코모두스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진실된 자 그리고 현자라고 불리던 명군이었다. 하지만 마커스 아우렐리우스의 치명적인 실수는 적합한 양자가 아닌 단순 혈육인 친아들 코모두스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어 치명적인 오점을 남긴다.

마커스 아우렐리우스 자신도 입양 되어 훈련과 교육을 통해 로마 황제의 자리에 올랐지만 혈족 코모두스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준다.

 

 

대대로 로마의 황제들은 자신의 혈육들에게 로마 황제 자리를 물려주지 않고 일찍이 유망한 아이들을 입양하고 육성하고 교육 훈련 시켜 로마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영화처럼 코모두스는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살해하지 않고 로마 황제의 자리를 물려 받는다. 실제 역사에서는 마커스 아우렐리우스가 자신의 의지로 친 아들 코모두스에게 로마 황제 재위를 물려준다. 이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엄청난 오점으로 역사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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