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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 History

[USA] - 미국 8대 대통령 마틴 반 뷰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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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Van Buren 마틴 반 뷰렌

출생: 1782 12 5
사망: 1862 7 24
정당: 민주당 Democrat
재임기간: 1837년부터 1841
부통령: 리처드 M 존슨 Richard M. Johnson
별명: Little Magician 작은 마법사

 

눈물의 길(The Trail of Tears)

 

앤드류 잭슨 대통령이 인디언 이주법(미국 원주민 이주법)을 승인한 이후 1830년부터 1850년까지소위 ‘5개의 무명화 된 미국 원주민 부족들은 자신들의 고향에서 강제 이주를 당해야 했다. (인디언은 미국 원주민이라고 일컫는 것이 옳다.)

현재는 미국 원주민 이주법은 인종 청소로 분류가 되었지만, 이 당시만 해도 백인 우월주의가 만연하고 당연한 사상이었다.

5개의 문명화 된 미국 원주민 부족은 Creek(크릭족), 세미놀(Semionle) 치카소우(Chickasaw), 쇽타우(Choctaw) 그리고 체로키(Cherokee) 부족들이었다.

 

눈물의 길과 문명화된 다섯 부족들의 이주 과정에 대한 지도

 

체로키 족들의 경우 미국 원주민 이주법에 반대하여 법원에 항소를 하였다. 이는 체로키 국가 대 조지아 주 사건(Cherokee Nation vs Goergia) 그리고 우스터 대 조지아 (Worcester vs Georgia) 등 다양한 사건으로 대법원 판결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지만 미국 대법원은 체로키 국가(Cherokee Nation)은 독립적인 국가로서 인정을 하지 않았으며, 체로키 족들 또한 미국 연방의 일부이기 때문에 연방정부의 법에 따라야한다고 선고를 하였다.

마틴 반 뷰렌의 대통령 재임 기간 중 1838년과 1839년 사이, 체로키 족들은 조지아 주를 떠나 일명 눈물의 길 ‘Trail of Tears’ 라고 불리는 가혹한 경로를 따라 이주를 해야만 하였다.

 

체로키 족들의 이주에 대한 지도

 

미국 연방정부의 윈필드 스콧 장군(Winfield Scott)의 지휘 아래에 15,000명의 체로키 부족민들은 눈물의 길을 따라 오클라호마의 미국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이동을 하여야 했다.

눈물의 길은 거리도 멀었지만, 험난한 지형을 뚫는 매우 가혹한 경로였다. 미국 연방정부의 행진 속도 또한 매우 빨랐으며, 부족한 보급품이나 가혹한 자연 환경으로 인하여 눈물의 길을 따라 이주한 부족민들 중 1/4이 사망을 하고 말았다.

 

1837년 경제 위기 & 재무부 독립 법안 Independent Treasury Act

 

미국의 제 2 연방은행의 업무가 모두 중단된 이후 앤드류 잭슨은 주화 유통법을 제정하여 미국 연방 토지에 대한 모든 거래는 지폐가 아닌 금속 통화(스피시, specie로도 불리는 은과 금화를 일컫는다)로만 이루어지도록 주화 유통법을 제정하였다. (이 당시만 해도 모든 경제 체제는 금의 양에 따라 화폐를 발간하는 금본위제였다.)

미국 연방정부가 미국 제 2 연방은행에서 인출한 연방 예금은 자연스레 각 주의 주립 은행들에 예치가 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 당시만해도 미국의 주립 은행들은 대출에 대한 검토가 부실 하여 무분별하게 자금이 대출 되었고, 이로 인해 화폐의 유통 체계가 부실하였는데, 주화 유통법으로 인해 화폐 유통 순환이 더욱 악화되었다.

연 이은 악재로 인하여 지폐 화폐의 가치가 크게 하락하였고, 이는 자연스레 대규모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당시는 아직도 금본위제에 따라서 금의 양에만 따라 화폐가 발간되어야 했기에 앤드류 잭슨은 지폐 화폐의 가치를 보존하고자 주화 유통법을 실행하였지만 도리어 이 주화 유통법이 인플레이션을 더욱 악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주화 유통법이 악법이라고 가정을 하기 보다는 이미 주립 은행들이 부실한 대출을 무분별하게 발행하였기에 어찌 되었든 벌어질 일이었다.)

 

 

은행들이 지폐 화폐와 주화의 교환을 중단하면서 대출이나 채권 또한 발행을 못하면서 화폐 유통이 급속도로 둔화되었고, 이는 많은 이들의 채무 불이행으로 이어졌다. 확장된 미국 토지 개발이 주된 거래였기에 토지 값 또한 매우 떨어졌다.

결국 이 1837년 경제 위기로 인하여 1,000여개의 은행들이 파산을 하는가 하면 실업률이 치솟고 미국 전체가 경제적인 위기에 봉착 하였다.

 

 

마틴 반 뷰렌은 재무부 독립 법안(Independent Treasury Act)을 제안하여 연방정부의 재정이 무분별한 대출 및 채권 발급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독립적인 연방 재무부를 설치하고자 하였다.

경제적 위기로 인한 독립적인 재무부의 설치의 필요성에도 제법 많은 의원들이 연방 정부의 예금이 자신의 주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두려워 하여 반대를 하였으나 결국 1840년 의회에서 재무부 독립 법안을 승인 하였다.

 

재무부의 위력을 우려한 것을 풍자한 삽화

 

● 전신기의 개발, 사무엘 모스와 모스 부호

 

사무엘 모스는 와이어(전선)을 통한 전기의 흐름(전류)를 이용한 통신 수단으로서 전신기를 처음으로 개발하였다.

사무엘 모스는 뿐만 아니라 전류의 긴 주기와 짧은 주기를 조합하여 이들을 알파벳으로 치환 할 수 있는 모스 부호체계 또한 개발하였다. 사무엘 모스의 모스 부호는 현재까지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신호로 사용되고 있다.

사무엘 모스는 전신기와 모스 부호를 통한 통신 수단을 연방 정부에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자 시연회를 계획하였다.

 

 

사무엘 모스는 볼티모어와 워싱턴 사이에 전선을 이은 이후 연방 정부 인사들을 위한 시연회를 개최하였다. 사무엘 모스는 대법원에서 전신기와 모스 부호를 시연하였는데, ‘신은 무엇을 창조하였는가’ What hath God wrought!’ 라는 전문을 입력하였고, 곧바로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공식적인 최초의 유선 메시지였던 셈이다. 참관을 한 연방 정부 인사들은 이 시연회에 크게 놀랐으며, 연방 정부 기관들을 위한 전신기와 전신주의 설치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전문 신은 무엇을 창조하였는가’ What hath God wrought!’ 

 

텍사스 문제

 

텍사스가 멕시코 정부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고, 미국 의회 또한 텍사스 공화국의 자주성을 인정하였다. 텍사스 또한 미국 연방에 가입을 하기 위해 움직였지만, 텍사스 주를 미국 연방에 받아 들이는데 큰 문제점이 있었다.

텍사스는 멕시코 정부가 중앙 집권화를 시도하는 바람에 독립을 선언 하기도 하였지만, 가장 결정적으로는 멕시코 정부는 노예제 폐지를 법제화 시켰고, 텍사스 또한 노예 폐지를 하도록 강요 하였기에 텍사스가 이에 반기를 들고 유혈 사태를 감수하면서까지 독립을 하였다.

 

 

마틴 반 뷰렌은 텍사스를 미국 연방에 편입시키면 미주리 타협안(Missouri Compromise)에 의해 만들어진 노예주와 자유 주의 균형이 깨질 것을 매우 두려워하였다.

미국 연방은 텍사스를 받아들이면 크게 국토를 확장 할 수 있었지만, 텍사스 주의 노예제 문제는 미국 연방이 선뜻 텍사스를 편입 시키지 못하는 큰 걸림돌이 되었다.

이 딜레마는 텍사스 문제라는 이름으로 미결 된 채로 유지가 되고 있다가 미국 10대 대통령 존 타일러의 임기 마지막이 되어서야 텍사스 주의 공식 편입으로 해결이 된다.

 

 

캐롤라인 호 사건(The Caroline Affair)

 

미국의 북부 캐나다는 여전히 대영 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으나, 마틴 반 뷰렌의 임기 시절, 캐나다독립을 위한 독립 운동이 시작되었다. 캐나다의 독립 세력은 토론도에 대한 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미국과 캐나다 국경사이의 나이아가라 강에 있는 네이비 섬(Navy Island)으로 후퇴를 하였다.

 

캐나다 독립 항쟁 / 네이비 섬(Navy Island)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

 

몇몇 미국인들은 이를 알고, 이들을 캐롤라인 호(Caroline)라는 이름의 증기선을 통해 남몰래 보급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었다. 대영제국 충성파 캐나다 민병대는 이를 알고 캐롤라인 호를 방화하여 나이아가라 폭포너머로 캐롤라인 호를 떨어뜨렸다.

캐롤라인 호 사건으로 인하여 미국인 한 명이 사망하고 여럿이 부상당하고 말았는데, 이로 인해 대영제국에 대한 전쟁을 선포에 대한 여론이 끓었다.

미국 시민들과 의회에서도 이러한 여론이 끓었지만 마틴 반 뷰렌은 대영제국과의 중립을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다.

 

캐롤라인 호의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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