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일병 구하기] - 병사들이 토하는 이유, 해군 폭파대( NCDU), 미군 장비 - M1 개런드 M1A1 톰슨, M2 화염방시기, M1 카빈, 뱅글로어 토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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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일병 구하기] - 병사들이 토하는 이유, 해군 폭파대( NCDU), 미군 장비 - M1 개런드 M1A1 톰슨, M2 화염방시기, M1 카빈, 뱅글로어 토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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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병사들이 상륙정 안에서 구토를 하는 이유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참가하는 모든 연합군의 병력들은 보안 유지 및 병력 보전 등의 이유로 모든 외출, 외박과 휴가가 통제된 채 배럭(주둔지)와 기지에서 갇혀 지냈다.

오버로드 작전 즉,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개시일 D-데이는 본래 1944 6 4일이었으나, 높은 파도와 나쁜 날씨로 인해 미뤄졌다. 연합군 병력들은 주둔지에서 지내면서 각종 영화 등을 보여주면서 음식 또한 양껏 먹을 수 있도록 조치가 되었다.

스테이크, 돼지고기, 파이 등의 음식도 병력들이 접할 수 있었고, 연합군 병력은 마지막 중요한 작전 이전에 잘 먹여 두는 것이라는 것 또한 직감하고 있었다.

 

 

D-Day 6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개시일, 상륙하는 병력들은 베이컨과 달걀 그리고 뜨거운 커피도 보급이 되어서 아주 무거운 아침 식사를 하였다.

하지만 든든했던 아침식사는 도리어 역효과를 내어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임하는 병력들이 파도로 인한 뱃멀미, 긴장감과 압박감 등으로 인하여 상륙정 내에서 구토를 많이 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로 인해 숙련된 병력들은 작전 개시날에는 아주 가볍게 식사를 마치기도 하였다는 후문이 있다.

 

해변에 물고기들이 널브러진 이유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앞서 450개의 중 폭격기들이 독일 군 방어 시설에 공습을 가하였다. 더 많은 전투기들과 전폭기들이 호위와 지상공격 임무를 위해서 노르망디의 독일 군들을 타격하였다.

50~70대의 구축함, 순양함과 전함들이 동원되어 노르망디 해안을 포격하여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일 독일군은 말그대로 날벼락을 맞았다. 독일군들 또한 포격으로 반격을 가하면서 노르망디의 하늘, 땅과 바다는 태초에 지구가 생겨나듯 요동을 치고 있었다.



공습, 포격과 해안포 사격 등의 폭발들과 진동 그리고 폭압 등으로 인하여 노르망디 해안에 있던 물고기들 또한 기절하거나 사망하고, 해안 전체에 흩뿌려졌다.

구축함들의 포 사격으로 인한 후폭풍과 반동 그리고 진동으로 인해서 구축함에 있던 변기들이 산산조각나는 사례들도 보고가 될 정도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일의 해안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일부 병사들은 철모(방탄모)에 그물이 있었던 이유

지정 사수 또는 저격수였던 다니엘 잭슨 일병과 같은 일부 병사들은 철모에 그물이 있었다. 이 그물은 철모에서 반사되는 빛의 양을 줄이는 효과도 있었으며, 특히나 저격수와 같이 위장이 필요한 임무를 가진 병사들의 경우, 주위의 풀이나 구조물들을 뜯어서 붙일 수 있도록 철모에 그물이 쳐져 있었다.

저격수나 지정사수들의 경우 자리를 잡고 사격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이들에게는 위장거리를 꽂을 수 있고 빛이 반사되는 것 또한 방지하기 위해 철모에 그물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M1 개런드(The M1 Garand)

캐나다 태생의 존 칸티누스 개런드는 매사추세츠에 위치한 스프링필드 무기고에서 근무를 하면서, 혁신적인 반자동 소총인 M1 개런드를 발명한다.

1936년도에 M1개런드는 미국의 정식 표준 보병 소총으로 지정이 되지만 실제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1941년 이전까지는 대량으로 생산되어 보급되지 않고, 천천히 표준 소총으로서 자리 잡고 있었다.

1941 12, 일본 제국의 기습적인 진주만 공격으로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간 미국은 전 병력들에게 M1개런드 소총을 보급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다.

 

가장 먼저 일선에 투입된 미국 해병대원들은 결국 과달카날전역과 같은 전투에 참여하면서 M1개런드가 아닌 스프링필드 소총을 가지고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다. M1 개런드는 30구경 30-06 스프링필드 탄환 즉 7.62mm x 63mm의 탄약을 사용하는 반자동 소총이었다.

M1 개런드를 통하여 미국은 유일하게 전 보병 병력들이 반자동 소총으로 무장한 군대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보병의 분대 소대 수준에서의 화력에서는 볼트 액션 소총을 사용하는 타군과 비교해서 압도적인 화력을 가졌다. 그 성질이 불 같던 조지 패튼 장군도 M1 개런드를 전투에서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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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A1 톰슨 기관단총 (M1A1 Thompson)

T 톰슨(John T. Thompson)이라 불린 미국인은 톰슨 기관단총 시리즈의 모델을 개발하였다. 톰슨 기관단총 시리즈 중 특히나 초기 M1928 모델의 경우 시카고 타자기라는 악명으로 대공황과 미국 금주령 당시 마피아들이 자주 사용하던 총기였다.

하지만 M1928톰슨의 드럼형 탄창은 오염이나 충격에 취약하여 변수가 많은 전장 환경에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였다.

또한 M1928 톰슨 모델은 대량 생산하기에 부적합하였고 값이 비싸서 군에 납품이 불가하였다. 여러 번의 개량을 통하여 드디어 전쟁에 사용하기 적합한 톰슨 기관단총 모델인 M1A1톰슨 기관 단총이 탄생하였다.

 

M1A1톰슨 기관단총은 45 ACP 탄환 즉 11.43 x23 mm의 탄약을 사용하였는데 본래 이 45ACP 탄환은 권총용도로 개발된 것이다.

ACP의 약자는 콜트 자동 권총(Automatic Colt Pistol)을 나타내며 이 콜트 권총에 사용되는 탄환이 표준 45 ACP 탄환이 된다. M1A1톰슨 기관단총은 연발로 사격이 가능하여 기관단총이 흔치 않던 2차세계대전 당시 타국가의 군과 대조하여 미국의 보병 분대 화력을 한껏 올린 또 다른 요인이었다.

작중에서는 밀러 대위의 주요 무기로 M1A1톰슨이 등장한다.

 

 

M1 카빈 (M1 Carbine)

카빈은 원래 총기 모델보다 더 짧은 총열을 가진 총기 모델을 지칭하는 단어로 정확도는 떨어지더라도 총열이 짧아지면 무게를 줄여 기동성을 높이는 등의 조치가 가능하다. M1카빈은 마국 국방부에서 정식으로 라이센싱한 최초의 카빈이지만 M1개런드의 총열을 줄인 모델은 아니었고 두 총은 관련성이 없고 심지어 다른 탄약을 사용하였다.

 

M1 카빈은 30 카빈 탄약이라고 불리는 30구경 탄환을 사용했는데 30카빈 탄약은 7.62 x 33mm길이로 M1개런드가 사용하는 탄약의 길이의 절반 수준이었다. M1카빈의 무게는 약 5.2lbs 2.4kg M1A1톰슨이나 M1개런드의 절반 수준의 무게를 가졌다.

작중엔 호바스 상사의 주요 무기로 M1 카빈이 등장한다.

 

 

M1A1 뱅갈로어 토피도 M1A1 Bangalore Torpedo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파이프 형태의 폭파물들은 M1A1 뱅갈로어 토피도라는 장애물용 폭파물이다. M1A1 뱅갈로어 토피도는 약 1.5m길이의 쇠파이프로 만들어져 속은 TNT로 채워 만들었다. 이 긴 쇠파이프 같은 M1A1 뱅갈로어 토피도는 철책, 철조망, 지뢰지대나 기타 방어용 구조물들을 폭파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M1A1 뱅갈로어 토피도의 길이 덕분에 운영을 하는 이들은 그나마 안전한 거리에서 폭파물들을 놓을 수 있었고 M1A1 뱅갈로어 토피도의 폭파 반경 덕분에 보병들이 통과할 정도로 철조망 지대나 지뢰 지대 등을 폭파하여 없애고 진격로를 만드는 게 가능했다.

 

노르망디 상륙 당시 병사들이 익사한 이유

일반적인 병사의 군장 무게는 70 -100kg으로 약 31kg에서 45kg까지 일렀다. M1개런드 조차도 거의 9-10파운드 즉 5kg에 이르는 무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각 병사는 최소 성인 남성 절반의 무기를 짊어지고 있던 셈이다.

군장은 꽉 맨 채로 이고 가기에 병사가 물에 빠지면 포탄과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꽉 맨 군장을 푸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병사들이 익사를 하였다.

 

공수부대원들의 경우 추가 20-30 파운드 즉 10kg-15kg의 낙하산과 추가 장비가 있어서 더욱 힘겨웠다. 방어수단의 일환으로 독일군은 일부러 60 - 80cm 정도 높이의 습지와 늪지대를 인공적으로 만들었는데 많은 공수대원들이 엎어졌다가 군장의 무게를 못 이기고 이 인공 늪에 익사하기도 하였다.

 

 

M2 화염 방사기

1943 M2 화염방사기는 정식 무기로 미국이게 채택이 된다. M2화염방사기는 66파운드 즉 30kg에 육박하며 약 20m의 사정거리를 가진 무기였다. 따라서 화염방사기 운영병은 보호를 받는 상태에서 근거리에서 적들에게 접근을 해야 했다.

 

비록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는 M2화염 방사기가 매우 극적으로 등장하여 일격에 독일군 벙커를 화염에 불사르지만, 실상은 운영 난이도, 필요성이나 무기 등의 비효율성으로 인하여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포함한 유럽전선에서는 M2화염방사기는 자주 사용되지 않았다.

M2화염방사기는 주로 태평양 전선에서 활약을 했는데 독일군의 방어 화력은 일본군보다 높을 뿐더러 동굴이나 깊은 정글 속에 독일군이 숨는 전술은 사용하지 않았기에 유럽전선에선 영화와 달리 크게 활약하지 않는다.

 

해군 전투 폭파 부대 Naval Combat Demolition Unit – NCDU

해군 전투 폭파 부대 NCDU (The Naval Combat Demolition Unit) 는 특별히 훈련되어 상륙작전에서의 폭파 임무를 담당한 특수 부대로 여러 전투 공병들도 같이 배치되어 노르망디 해안 등 해안에 상륙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등장하여 밀러 대위에게 얼른 대피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해군전투폭파부대(NCDU)의 임무는 해안의 여러 장애물들과 방어 시설들을 폭파하여 추후 상륙할 전차나 차량들을 위해 길을 뚫는 것이었다.

 

 

오마하 해변에는 약 175명의 해군 전투 폭파 부대원들이 투입되어 60명이 부상입고 31명이 전사하였지만 그 모든 혼란에도 불구하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일에만 임무의 1/3을 완수하는 기염을 토한다.

후에 이 해군 전투 폭파 부대는 해군 수중 폭파대(UDT, Under Water Demolition) 에 흡수되었고 이는 후에 미국 해군의 자랑 네이비 씰(Navy SEAL)의 유래가 된다. (SEAL SEa, Air, Land의 약자고 육해공을 모두 아우른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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