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에이브럼 가필드 (James Abram Garfield) |
출생: 1831년 11월 19일 |
사망: 1881년 9월 19일 | |
정당: 공화당 (Republican) | |
재임기간: 1881 | |
부통령: 체스터 A. 아서 Chester A. Arthur | |
별명: 목사 대통령 Preacher President |
● 또 미국 대통령이 암살당하다.
제임스 에이브럼 가필드(James Abram Garfield)는 크래딧 모빌리어 정치스캔들(Credit Mobilier scandal)에 관여를 했던 이력(모든 이들에 대한 기소나 추가 제재는 없었다.)으로 인해 대중들은 제임스 가필드의 대통령 당선으로 인해 많은 정치 스캔들과 정치적 부패가 만연 할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하지만 의외로 제임스 에이브럼 가필드는 공화당 강성 핵심층들(스탈워트, stalwart, 핵심층) 들과 협의한 정치적 약속들을 어겨가면서 부패 공무원들을 색출하는 등 정치적 노력을 하였다.
찰스 귀토(Charles Guieteau)는 자신을 지방 강성 공화당 핵심층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제임스 가필드를 지지하였지만 그는 자기에게 정치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분노하여(실질적인 약속이나 협의는 없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찰스 귀토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제임스 에이브럼 가필드 암살을 기획한다.
찰스 귀토는 1881년 7월 2일 볼티모어&포토맥 철도의 6번가 역에서 제임스 에이브럼 가필드 대통령에게 총상을 입힌다.
제임스 에이브럼 가필드는 이 총상에서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1881년 9월 19일에 사망해버리고 말았다. 당시 의학적 지식에 한계가 있어서 위생적인 처치가 되지 않아 에이브럼 가필드 대통령은 패혈증과 폐렴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체스터 앨런 아서(Chester Alan Arthur) |
출생: 1829년 10월 5일 |
사망: 1886년 11월 18일 | |
정당: 공화당 (Republican) | |
재임기간: 1881 ~ 1885년 | |
부통령: 없음 | |
별명: 고귀한 아서 Elegant Arthur |
● 펜들턴 법(The Pendleton Act)과 미국 공무원 개혁
제임스 에이브럼 가필드 대통령의 암살은 미국 공무원 개혁 여론에 더욱 힘을 실어주게 되었다.
비록 찰스 귀토의 살인 동기가 어떤 정치적 부패와도 접점이 없었지만, 대중들은 찰스 귀토의 살해 배경 등을 미국 내 정치계의 부패와 연결하여 생각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중들 또한 체스터 앨런 아서 부통령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체스터 아서가 부통령 후보가 되었던 것 자체가 정치적 거래의 일환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공무원 개혁에 대해서 체스터 앨런 아서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체스터 앨런 아서는 공화당의 스탈워트(stalwart) 즉, 핵심층들과의 정치적 거래의 일환으로 부통령 후박 되었고, 가필드 대통령의 사망으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오히려 적극적으로 공무원 개혁에 뛰어 든다.
체스터 앨런 아서 대통령은 펜들턴 법(Pendleton Act)를 제정하여 연방 정부 공무원들의 정당 활동이나 개입을 금지하였으며, 공무원들의 성과제도 개선을 위한 위원회를 설립하였다.
펜들턴 법은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시험을 치르고 시험의 성적에 따라 공무원이 될 수 있는 일종의 고시제 또한 마련하였다.
사실 이전의 미국의 정당 활동의 재정적 기반이 공무원들로부터 받은 정치자금이 큰 부분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펜들턴 법은 공무원들의 정당 활동을 금지하여서, 민간회사들이 입법기관이나 정치인들에게 접근을 하고 정치자금을 지원하는 체계의 마련에도 기여를 하였다. 펜들턴 법은 현재 미국 공무원 체계의 큰 기틀을 닦은 셈이다.
● 버팔로 빌(Buffalo Bill)
버팔로 빌이라고 불리는 인물의 실제 이름은 윌리엄 프레드릭 코디(William Frederick Cody)였다.
윌리엄 코디는 미국 전 대륙을 가로지르는 우편 배달 서비스인 포니 익스프레스(Pony Express)의 일원으로서 일을 하였으며(이 사업은 유지비를 감당 못해 빠르게 망하였다.) 이 경력을 바탕 삼아 버팔로 사냥 산업에 뛰어 든다.
윌리엄 코디는 훗날 캔자스-태평양(캔자스-퍼시픽) 철도의 건설 인부들을 위해 버팔로 고기 유통을 하기로 거래를 하면서 수 많은 버팔로를 죽여서 버팔로 빌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버팔로 빌은 이러한 일련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버팔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라는 서부극 (Buffalo Bill’s Wild West) 공연을 통해 미국 개척 시대 카우보이의 삶을 묘사하여서 미국 전역에 큰 인기를 끌었다.
버팔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 공연은 실제 수족의 전쟁 영웅 시팅불(앉아 있는 황소)를 섭외 하는 등 미국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끄는 영향력 있는 공연이 되었다.
● OK 목장에서의 결투 (The Gunfight at O.K. Corral)
OK 목장에서의 결투(The Gunfight at the O.K. Corral)는 서부 개척 시대나 서부 활극의 가장 대표적인 결투 중 하나로 수많은 매체들에게 영향을 준 사건이었다.
무법자들과 보안관의 빠르게 권총을 발사하는 결투는 이 OK 목장에서의 결투에서 유래 하였고, 서부의 무법자와 같은 모티프는 이 OK 목장에서의 결투에서 기원한다.
1881년 10월 26일, 애리조나 주 지역의 툼스톤(Tombstone, 사실 이것 또한 묘비라는 이름이라서 OK 목장의 결투를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어프 형제들을 주축으로 한 보안관 무리와 클랜턴 갱 무법자 집단들이 대치를 하고 결투를 벌인다.
미국 보안관 비질 어프(Vigil Earp), 와이어트 어프(Wyatt Earp), 워렌 어프(Warren Earp)과 모건 어프(Morgan Earp)로 구성된 어프 가족과 도크 홀리데이(Doc Holiday)와 같이 보안관을 지지한 무리와 아이크 클랜튼 (Ike Clanton)과 빌리 클랜튼(Billy Clanton)을 주축으로 한 톰 맥로리(Tom McLaury), 프랭크 맥로리(Frank McLaury)등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클랜턴 갱 즉 무법자들은 툼스톤의 OK 목장 앞에서 결투를 벌인다.
클랜턴 갱 무법자 집단들은 이미 여러 번 미국 보안관들과 싸움, 음주문제 및 도박 등으로 인한 갈등으로 인해 서로에 대한 적개심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OK 목장에서의 결투로 인해 빌리 클랜턴, 톰과 프랭크 맥로리가 사망하고, 클랜턴 갱은 흩어지고 만다.
클랜턴 갱 무법자들은 추후 어프 가족들을 고소하기도 하였으나, 어프 가족원들은 무죄를 선고받는다.
이후 모건 어프가 암살되는 등 사태가 벌어지면서 어프 가족들이 다시 이 무법자들을 추적하면서 어프 복수의 질주 (Earp Vendetta Run)이라고 불리는 추격전을 벌이는 등 사건들이 발생하였고 이 일련의 사건들은 그야말로 거친 서부 시대를 대표하는 활극이 되었다.
● 최초의 핫도그
핫 도그의 유래에 대한 설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는 안톤 퓨흐방어 (Anton Feuchtwanger)가 최초로 핫도그를 발명하였다는 설이 있다.
안톤 퓨흐방어는 프랑크 소시지의 고장 프랑크푸르트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독일계 이주민으로 그는 세인트 루이스에서 소시지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다.
소시지를 베어 물면 육즙이 터져서 안톤 퓨흐방어는 흰 장갑을 손님들에게 대여하곤 하였는데, 문제는 손님들이 너무 자주 이 장갑을 들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톤 퓨흐방어는 장갑 대신 소시지를 감쌀 수 있는 빵/번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최초의 핫도그라는 유래가 있다.
● 1882년 중국 이민자 금지 법(The Chinese Exclusion Act of 1882)
이미 미국 정부는 앙겔 협약으로도 불리는 1880년 협약을 통해 연간 중국 이민자들의 수를 제한하고 있었지만 의회에서는 강력하게 중국 이민자들의 입국 금지 조치를 요구하였다.
대통령 체스터 앨런 아서는 중국 이민자의 전면입국 금지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였지만 결국 의회의 요구에 응하여 10년간 중국 이민자들의 입국을 금지하는 1882년 중국 이민자 금지법에 서명하고 말았다.
이 법안은 이미 미국에 입국한 중국 이민자들의 미국 국적 취득 또한 제한하였다.
연방 정부는 10년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여러 번 이 1882년 중국 이민자 금지 법의 기한을 갱신하였고, 결국 미국 내 중국계 시민들의 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이 경향은 1943년 매그너슨 법 즉, 1943년 중국인 제외안에 대한 수정법안이 제정되기 전까지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중국계 미국인들이 지방정부와 연방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 반전의 남자
체스터 앨런 아서(Chester Alan Arthur)가 제임스 에이브럼 가필드의 부통령 후보가 된 계기는 공화당 핵심층의 정치거래의 일환이었다.
루스코 콘클링(Roscoe Conkling)으로 대표되는 공화당 스탈워트(Stalwart)는 가필드와 협의하여 체스터 앨런 아서를 부통령으로 내세웠다.
체스터 앨런 아서 그 자신도 자기 직원들에게 공화당을 금전적으로 지원할 것을 강조한 죄로 19대 대통령 러더포드 버처드 헤이스에게 해임당한 인물이었다.
아무도 체스터 앨런 아서가 정직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바라지 않았지만, 펜들턴법을 필두로 체스터 아서 대통령이 펼친 공무원 개혁 등의 정책이나 여러 포크 배럴 입법(pork barrel legislation, 지역 유지나 정치인들의 지역구에게만 이득을 주는 쓸데없는 입법안)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하여서 정부 지출을 막는 등 체스터 앨런 아서의 정직한 정책 수행은 그를 ‘반전의 남자’로 부르게 만들었다.
체스터 앨런 아서는
“나는 콘클링씨로부터 큰 은혜를 받았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면서 나는 전지전능한 하느님께 큰 은혜를 입었다”
고 다변하여 그가 이러한 정책들을 수행한 계기를 털어놓기도 하였다.
“I am indebted to Mr. Conkling but for the presidency, my debts are to the Almigh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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