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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

제이 커틀러(Jay Cutler) - 로니 콜먼의 영원한 라이벌 / 4회 미스터 올림피아의 오픈 보디빌딩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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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커틀러의 사업 홈페이지 - 보충제와 의류 
https://jaycutler.com/

 

제이 커틀러의 인스타그램 
https://www.i
nstagram.com/jaycutler/?hl=en

 

제이 커틀러의 유튜브 채널 – JayCutler TV
https://www.youtube.com/@JayCutlerTV

 



제이 커틀러(Jay Cutler) – 로니 콜먼(Ronnie Coleman)과의 라이벌 관계 


제이 커틀러는 10번이나 오픈 보디빌딩부문(사실 옛날에는 오픈 보디빌딩 외엔 없었다.) 에서 미스터 올림피아의 우승 또는 준우승을 차지한 전후무후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한번 출전하기도 어려운 미스터 올림피아를 제이 커틀러 만큼 1등과 2등 자리를 많이 차지한 일관성 있는 보디빌더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제이 커틀러는 괴물 보디빌더 로니 콜먼과의 라이벌 관계로 보디빌딩의 또 다른 황금기를 만들어 냈다. 

 


제이 커틀러와 로니 콜먼이 미스터 올림피아를 두고 경쟁을 하던 시기에는, 보디빌딩 팬은 제이 커틀러 팬 또는 로니 콜먼 팬으로 양분할 수 있을 만큼 보디빌딩계에서 로니 콜먼과 제이 커틀러의 괴랄한 몸은 독보적이었다. 

제이 커틀러와 로니 콜먼은 보디빌딩계의 슈퍼스타였으며 엄청난 라이벌 관계를 가졌지만, 이 둘의 관계는 매우 긍정적이었으며, 이 둘은 은퇴한 이후에도 친분과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제이 커틀러와 로니 콜먼 사이의 라이벌 관계는 현재까지도 많은 보디빌딩 팬들과 일반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로니 콜먼과의 경쟁구도에 대한 제이 커틀러의 인터뷰

 


미스터 올림피아에서의 2등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몸이 좋은 두번째 사람이라는 뜻깊은 의미가 있으며, 미스터 올림피아 자리만큼 중요한 건 로니 콜먼을 이기는 것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로니 콜먼과의 경쟁을 통해 그저 반복적이고 인위적인 순위 경쟁적인 부문에 대한 생각을 버린 이후부터 나의 커리어는 발전하였다. (의역)


Second place is still second best to the best guy in the world, and I was so eager to not just win the Olympia but beat Ronnie Coleman. Looking back now there’s so much clarity to my career since I stepped aside and got out of the robotic competition side of my brain.

 



제이 커틀러의 업적 요약

10번이나 미스터 올림피아 오븐 보디 빌딩 부문에서 1등과 2등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로니 콜먼의 공식적인 라이벌로서 그리고 유일하게 미스터 올림피아를 (2024년 기준) 재탈환하여 총 4회 미스터 올림피아 우승을 이룩한 제이 커틀러는 보디빌딩계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제이 커틀러 또는 본명 제이슨 아이삭 커틀러는 이러한 보디빌딩 업계에 대한 공로로 국제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2021년 헌정 되었다. 제이 커틀러의 전설적인 쿼트 스톰프 또는 커틀러 스톰프 즉, 대퇴사두 내려치기는 현재까지도 많은 보디빌딩 팬들이 되감아 보며 희열을 느끼곤 한다. 

 




제이 커틀러의 가족 그리고 보디빌딩 입문 이전

 
제이 커틀러의 본명은 제이슨 아이삭 커틀러(Jason Isacc Cutler)이다. 제이 커틀러의 생일은 8월 3일이며, 그는 미국 매사츄세스 주의 워체스터에서 1973년 8월 3일 태어났다. 제이 커틀러는 전직 군인 가족에서 태어났으며, 6명의 다른 형제 자매들이 있었다. 

제이 커틀러는 어렸을 때 장-클로드 반담 그리고 실베스터 스태론 등의 마초적인 배우들이 등장하는 티비 프로그램과 영화들을 보며 이러한 근육질 몸에 대한 우상을 키웠다고 한다. 

 

 

제이 커틀러가 4세가 되던 해, 제이 커틀러의 부모님은 이혼하였지만, 부모님은 꽤나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였고, 제이 커틀러의 부모님은 제이 커틀러에게 보디빌더로서 많은 지원을 하였다. 

제이 커틀러는 와츄세트 지역 고등학교에 (Wachusett Regional high school) 다니면서 자신의 보디빌딩 커리어에 도움을 줄 케리를 만나는데, 제이 커틀러와 캐리는 10년 연애 끝에 결혼하지만 2009 년 이혼을 하였다.

 




제이 커틀러 – 보디빌딩 입문기와 IFBB 프로 카드  

제이 커틀러는 보디빌딩을 시작하기 이전에도 체구가 굉장히 좋았지만 본격적으로 보디빌딩을 시작한 것은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부터이다.

제이 커틀러는 틈틈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것을 즐겼는데,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체구가 좋아지는 제이 커틀러를 눈 여겨 본 마코스 로드리게즈(Marcos Rodriguez)라는 트레이너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보디빌딩 업계에 발을 들였다.

 

 

제이 커틀러는 원래 퀸시아그몬드 전문 대학교(Quinsiagmond Community College)에서 교정학 학위를 취득한 이후 교도관으로 교정청에 일하는 것이 장래 희망이었다. 하지만 제이 커틀러는 보디빌딩에 발을 들인 이후 이것이 자신의 운명임을 빠르게 직감하였고, 본격적으로 보디빌딩 업계에 ㄷ뛰어 들어갔다.

제이 커틀러가 뛴 첫번째 보디빌딩 시합은 1992년 골드스 짐의 워체스터 보디빌딩 챔피언십 (Gold’s Gym Worcester Bodybuilding Championship)으로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이후 제이 커틀러는 1993 NPC 아이언 바디 초대전의 청소년 부문 그리고 미들 웨이트 부문에서 우승을 하였다.

 

 


제이 커틀러는 보디빌딩에 입문한지 얼마 안 되어 빠르게 명성을 이어갔고, 유망한 보디빌딩 유망주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추가적인 근력 운동을 한 이후 제이 커틀러는 1996년 NPC 내셔널의 참가 부문에서 모두를 압살하며, 우승을 거머쥐고, 제이 커틀러는 23세의 나이로 IFBB 프로 카드를 획득하였다. 

 


제이 커틀러 – 미스터 올림피아 그리고 로니 콜먼과의 라이벌 관계


제이 커틀러는 1999년 최초로 미스터 올림피아에 진출을 하였고, 첫 미스터 올림피아에서는 14등의 성적으로 마감하였다. 

2000년에는 제이 커틀러는 8등으로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하지만 2001년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엄청난 거구의 몸으로 제이 커틀러는 등장하였다. 

1998년부터 로니 콜먼은 미스터 올림피아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었고, 그 누구도 로니 콜먼을 대적할 자가 나타나리라 상상 조차 하지도 아니 못하였다. 하지만 제이 커틀러의 거대하면서도 수분을 바짝 말려 스트라이에이션이 돋보이는 몸은 로니 콜먼의 미스터 올림피아 독재와 강점기를 위협하였다. 

 

 

즉, 이 2001년 미스터 올림피아가 제이 커틀러와 로니 콜먼의 전설적인 라이벌 관계의 시작이 되었다. 하지만 로니 콜먼이 다시 한번 2001년 미스터 올림피아를 차지하고 제이 커틀러는 준우승으로 마무리하였다.

하지만  IFBB(International Federation of Body Building, 국제 보디빌딩 연맹, 가장 권위 있는 보디빌딩 단체 및 미스터 올림피아 주관 단체)에서 불법 이뇨제 사용을 빌미로 제이 커틀러의 준우승 자리를 박탈하였다. 이로 인해 제이 커틀러는 2002년 미스터 올림피아에 참가를 못하고, 법정 소송 끝에 다시 자신의 2001년 미스터 올림피아 준우승 자리를 되찾았다.

 

 

IFBB와의 갈등을 딛고 제이 커틀러는 2003년, 2004년, 2005년 미스터 올림피아에 출전을 하였고, 로니 콜먼과 미스터 올림피아 자리를 두고 경쟁하였지만, 로니 콜먼에게 우승 자리를 내어주고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2006년, 제이 커틀러의 인터뷰상으로는 태어나 처음으로 라이벌 로니 콜먼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목격한 이후, 제이 커틀러는 33세의 나이로 로니 콜먼을 꺾고 2006년 미스터 올림피아 자리를 차지하였다. 

 

 

 

제이 커틀러 – 미스터 올림피아 자리 탈환과 은퇴


제이 커틀러는 2007년 미스터 올림피아를 또 다시 우승하여 샌도우 트로피를 차지한다. (미스터 올림피아의 우승 트로피는 샌도우 트로피라고 부른다) 하지만 2008년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덱스터 잭슨에게 샌도우 트로피를 내어주고 만다. 제이 커틀러는 이후 다시 자신의 몸을 갈고 딲아서 2009년과 2010년 미스터 올림피아를 다시 우승하여 2024년 기준 최초로 미스터 올림피아 자리를 재탈환하여 샌도우 트로피를 차지한 보디빌더로 기록되었다. 

 

 

2011년 미스터 올림피아에서는 필 히스(Phil Heath)에게 미스터 올림피아 자리를 내어주고 준우승을 차지하고, 2013년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6등을 차지하는 등 제이 커틀러는 한계를 느끼고 결국 보디빌딩 시합에서의 은퇴를 선언한다. 제이 커틀러는 한번 진출하기도 어려운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늘 최상위의 성적을 거두어 왔으며 2002년부터 2004년 아놀드 클래식의 연속 3우승을 포함한 수많은 업적을 이루어 내고 은퇴하였다.  

 


제이 커틀러 – 보디빌딩 은퇴 이후 


제이 커틀러는 4회 미스터 올림피아 우승 그리고 6회 준우승을 이룩하였다. 하지만 제이 커틀러는 보디빌딩 은퇴 이후에도 커틀러 뉴트리션 그리고 커틀러 애틀래틱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사업가로서도 성공을 하였다. 제이 커틀러는 사업을 계속 유지하면서 유튜브, 인스타그램 그리고 커틀러 캐스트라는 팟 캐스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디빌딩 업계에 여전히 몸을 담그고 있다. 

 

 

제이 커틀러의 시합 체중은 260 ~ 275 파운드 즉, 약 118kg에서 125kg이나 되었다. 제이 커틀러는 또한 로니 콜먼, 마커스 륄, 카이 그린, 구스타보 바델, 덱스터 잭슨, 필 히스 등 수 많은 숱한 기량의 보디빌더들과 경쟁을 해왔다. 

제이슨 아이삭 커틀러 또는 제이 커틀러는 이러한 보디빌딩 업계에서의 업적을 통해 2021년 국제 스포츠 명예 전당에 헌액 되었으며, 커틀러 스톰프 또는 쿼드 스톰프라고 불리는 제이 커틀러의 상징적인 대퇴사두 내려치는 포즈는 여전히 많은 보디빌딩 팬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제이 커틀러의 보디빌딩 시합 출전 이력과 우승 성적 


1993 NPC 아이언 바디 초대전(NPC Iron Bodies Invitational) – 청소년 및 남성 미들웨이트 부문 우승 
NPC 청소년 내셔널즈(NPC Teen Nationals) – 미들 웨이트 부문 우승 
1995 NPC 미국 챔피언 시합전 – 맨즈 미들 웨이트 그리고 오버롤
2000 IFBB 챔피언의 밤 우승 
2002 아놀드 클래식 우승 
2003 아놀드 클래식 우승
아이언맨 프로 인비태이셔널 
샌 프란시스코 프로 인비태이셔널 
더치(네덜란드) 그랑프리 
영국 그랑프리


2004 아놀드 클래식
2006 오스트리아 그랑프리 
루마니아 그랑프리 
더치(네덜란드 그랑프리)
2006 미스터 올림피아 
2007 미스터 올림피아 
2009 미스터 올림피아 
2010 미스터 올림피아 

제이 커틀러 – 인생의 교훈과 영감


제이 커틀러는 조용하면서도 꾸준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보디빌더로 많은 팬들을 양성하였다. 제이 커틀러는 타고난 재능도 있었지만 이러한 조용하면서도 묵직한 노력으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제이 커틀러는 인터뷰를 통해

“내성적인 사람들이 더 잘한다 – 고립된 삶을 살 수 있는, 로니 콜먼 같은 또 그 이전에 도리안 예이츠 같은 사람들이 잘한다. 프로 쇼 이전 12 또는 16주의 기간은 매우 고통스러운 삶이다. 인생은 매일 4걸음 5걸음 정도를 딛는 거랑 똑같다. 이걸 또, 또, 또 반복 하는게 삶이다. 하지만 여기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The introverts did better  the people who were able to live that very secluded life, like Ronnie and before that Dorian [Yates]. For those 12 or 16 weeks before a show, it’s a very boxy lifestyle. Your life is like four or five steps daily, and that’s what you do, again and again and again. Anything else is going to take away from that”

 


로니 콜먼에게 숱하게 많은 미스터 올림피아 자리를 내주었지만, 제이 커틀러는 자신에게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을 하였고, 절대 좌절을 하지 않았다. 제이 커틀러는 꾸준히 노력을 하였고, 이러한 노력을 통해 결국 미스터 올림피아 자리를 로니 콜먼에게서 받아내었다. 제이 커틀러는 그야말로 꾸준함이 결국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줄 삶을 살았다. 

 


제이 커틀러의 명언 


I had the goal to be the best since day one
일을 처음 시작한 날부터 나의 목표는 최고가 되는 것이다. 
Surround yourself with people who dream bigger than you do.
당신이 꿈꾸는 것보다 더 큰 꿈을 꾸는 사람들을 주변에 두어라.
I don't eat for taste, I eat for function.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기능을 위해서 먹는다. 
It’s Consistency. Stay with it. You have to do this Day In Day Out. It becomes a Lifestyle.
꾸준함. 꾸준히 해라. 이걸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해야 한다. 일상이 되어야 한다. 
Mentally, You have to be a little Crazy정신적으로, 약간은 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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