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군 벙커, 필박스, 토치카 German pillbox
콘크리트와 철제로 이어진 벙커는 필박스(pillboxes)라고도 불리며 러시아어로는 토치카(точка)라고 불린다. 세계 1차대전 때 부터 독일군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강력하게 만든 벙커로 방어선을 형성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독일군의 콘크리트 벙커 자체도 돌파가 어려웠지만 대전차 지뢰, 대인 지뢰와 각종 철조망과 전차호나 장애물들 또한 이러한 독일군 벙커와 함께 악명 높은 독일군의 방어력에 기여하였다.
독일군은 콘크리트 벙커들을 단독으로 운영하지 않고 여러 참호와 터널 등으로 서로를 연결하여 방어 병력들에게 보호와 동시에 기동력을 부여하였기 때문에 정적인 방어 구조물임에도 불구하고 독일군들은 유기적으로 방어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88mm Flak 18/36/37/41 독일제 다목적 88mm 대공포
독일군의 88mm 포 또는 아흐아흐(독일어로 아흐는 숫자 8을 뜻한다 Acht-Acht)는 대형 대공포로 설계가 되었지만 곡사포격, 대전차포, 직사사격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 독일의 다목적 대공포였다. 독일군은 cm로 포 구경을 나눠서 8.8cm 포로 분류를 하였다.
Flak 라는 단어는 독일어로 Flugabwhrkanone 의 줄임 말이며 이는 대공포를 뜻하는데 워낙 88mm 대공포가 악명 높아서 Flak는 영어로도 대공포를 뜻하는 일반 명사가 되었다.
실제로 88mm 포가 티거 전차의 주포로서 외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등장하진 않지만 대사로서 자주 등장한다. 독일의 88mm포는 야포, 대전차포로도 활약하며 멀티 롤을 수행할 수 있었지만 사실 연합군이 생각하는 만큼 많은 수량의 88mm 포들이 배치되어 있진 않았다.
하지만 워낙 88mm 포의 악명이 높다 보니 연합군의 일반적인 병사들은 거의 모든 독일 군의 포를 88mm포로 인식하곤 하였다. 그만큼 독일군의 88mm Flak 대공호는 연합군들에게 엄청난 공포를 선사하였다.
토트 회사(Todt Organisation)
후에 독일의 군수부 장관이 되는 프리츠 토트(Fritz Todt)가 세운 민간 및 군사 부문 건설 토목 회사가 바로 토트 회사 또는 토트 조직(Todt Organisation)이었다.
토트 회사는 대서양 방벽 건설을 포함한 독일의 나치 정부를 위한 많은 민간 및 군사 부문의 건설을 전담하는 토목건축 회사였다. 프리츠 토트와 토트 회사는 국제법률상에서 어긋나는 강제 수용소의 노동력을 쥐어짜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이 토트 회사는 한편으로 독일 정부에서 대공황에 대한 대응으로 추진한 공공 토목 건설 프로그램이었던 독일의 유명 국도 아우토반 또는 분데스아우토반을 설계하여 국제적 명성을 얻기도 하였다.
나치들이 독일 정권을 장악한 뒤 대공황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의 공공 건설 정책의 일환으로 경제와 고용을 위해서 토트 회사로 하여금 분데스아우토반을 건설하도록 하였지만 후의 전쟁을 위한 준비책으로도 아우토반 건설을 추진하였다.
대서양 방벽 Atlantic Wall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면서 연합군을 덩케르크에서 영국으로 철수하도록 유럽 대륙에 몰아내면서 소련 침공에 대한 준비를 실시한다. 독일의 나치 정부는 그 누구보다도 1차 세계대전에서의 양면 전선의 악몽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치 정부는 대서양방벽이라는 이름으로 대서양에 방어선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대서양 방벽은 토티 회사가 스페인의 북부 국경부터 북극해까지 3,100 마일 즉 약 5,000 km가 넘는 방어선을 구축하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요새화 된 벙커, 참호, 지뢰지대, 대공포 진지, 해안포 진지 등 여러 방어 시설들을 지어서 독일의 서부를 지키는 방벽을 건설하는 것이 대서양 방벽 프로젝트의 목표였다.
독일의 아프리카 전선 패배 이후 독일 아프리카 군단 사령관이었던 에르빈 롬멜 원수는 새롭게 편성된 B 집단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프랑스 해안의 대서양 방벽 건설의 감사관직도 겸하였다.
프랑스의 해안 쪽 대서양 방벽은 약 1,800 마일 즉 3,100km 길이에 달하였으며, 노르망디에 연합군이 상륙하기 이전에 결국 대서양 방벽은 완공이 되지 못하였다.
햄발켄(Hemmbalken) – 해안에 위치한 나무 장대 말뚝
독일군은 햄발캔(Hemmbalken)이란 이름으로 해안에 상륙하는 상륙정들을 저지하기 위해 긴 나무 장대 말뚝 같은 구조물들을 비스듬하게 배치하였다.
이 나무 햄발켄 장대 같은 구조묵의 끝에는 텔러마인과 같은 대전차 지뢰들을 꼽아서 상륙정들이 나무 말뚝 은 구조물에 부딪히는 순간 폭발을 하게끔 설계가 되었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썰물 때 개시되면서 이 햄발켄에 부딪혀 피해를 본 상륙정들은 드물었다.
히틀러유겐트(Hitlerjugend)
히틀러유겐트 단검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등장하는데, 히틀러 유겐트(Hitlerjugend)는 나치당에서 나치 이념의 조기 교육을 위해 설립한 청소년 단체로 10-18세 남자들을 대상으로 모집하였다. 히틀러유겐트는 최대 700만명의 가입자들이 있을 만큼 매우 영향력이 큰 단체였으며, 준군사조직적인 성향도 가졌다.
히틀러유겐트 단원들은 레슬링, 육박전이나 생존술도 배우고 사격도 하는 나치당에서 강조한 남성다움이 충만한 진정한 독일인이라는 이념으로 단순 청소년 단체라고 치부할 수 없는 훈련을 하는 준군사 조직이었다.
히틀러유겐트는 남아들을 현혹하고 소속감과 단체의 상징성을 더욱 부여하기 위해 히틀러유겐트 단검을 단원들에게 배부하곤 하였다. 히틀러유겐트 단원들 중에서 인원을 선별하여 편성돤 제12 무장친위대 사단 히틀러 유겐트 (12th SS 히틀러 유겐트 기갑척탄병 사단)가 탄생하기도 하였다.
이 어린 광적인 청소년들이 속한 12 SS 무장친위대 사단 히틀러유겐트는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에 큰 피해를 입히고 큰 피해를 받는 무모함으로 악명이 높았다.
사실 역사적으로 더욱 정확하기 위해선 존 H 밀러 대위가 라멜의 다리에서 최후의 전투를 벌일 때 이 12SS 히틀러 유겐트 무장친위 사단과 붙는 게 더욱 신빙성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광기 어린 청소년들과의 전투는 전체 주제와 다른 또 다른 바를 시사할 가능성이 높아서 개연성이 떨어지더라도 대신 2SS 무장친위 사단 다스 라이히(Das Reich) 가 등장하였을 것이다.
체코 헤지호그 (The Czech Hedgehog)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해변에 등장한 X 모양의 철제 구조물은 체코 헤지호그 즉, 체코 고슴도치라고 불리는 장애물이었다. 본래 체코 헤지호그는 대전차 장애물로 설계가 되어 전차들의 진격을 막거나 가능하면 작은 전차의 경우 장갑이 얇은 바닥을 찢는 것이 목표였다.
이 체코 헤지호그들의 경우 해변에 배치되어서 혹시나 모를 전차들의 상륙에 대비하여 전차의 진격을 막거나 상륙정들이 해변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썰물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면서, 이 체코 헤지호그들은 엄폐물로 활용이 되는 역효과가 있었다.
항복하는 체코 병사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항복을 하던 두 명의 병사는 사실 독일군이 아닌 체코인들이었다. 이들은 “제발 쏘지 마세요! 저는 독일인이 아닙니다. 저는 체코 사람입니다. 전 아무도 안 죽였습니다. 전 체코인입니다.” 외치지만 결국 사살당하고 미군 병사들이 “이것봐 나 저녁 먹을려고 손 씻었다!”라고 외치는 장면이 등장한다.
독일군들이 유럽을 점령하면서 점령지의 체코인들, 노르웨인, 덴마크인, 프랑스인과 벨기에인 등 다양한 국가에서 징집되거나 자발적으로 독일군에 지원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몇몇 전쟁 포로들의 경우에는 독일 군에 강제로 복무를 해야 했다. 이는 노르망디 해변에도 마찬가지여서 강제로 독일군에 의해서 대서양 방벽 건설이나 방어 임무 등에 투입되는 외국인들도 많았다.
MG42
MG 42 기관총은 1분에 1,200발의 탄환을 쏠 수 있었고, 이 빠른 연사속도 때문에 매우 특이한 전기톱과 같은 발사음을 냈다. 이 특이한 발사음과 엄청난 화력에 연합군들은 MG 42를 히틀러의 전기톱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하였다.
MG 42는 다목적 기관총으로 대공, 대지, 장갑차 및 전차 거치용으로 사용이 되곤 하였는데, MaschineGewehr 42 는 독일어로 말그대로 1942년도에 개발된 기관총이란 뜻으로 기관총 42년도형이라는 뜻이었다.
독일군의 보병 분대의 경우 Kar 98 K 볼트액션 소총으로 무장을 했기에, MG 42 기관총이 분대 화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MG 42는 독일 육군의 전술의 중심이 되었다.
MG 42의 높은 연사속도는 강점이자 약점이었는데, 너무 빠른 연사속도로 인하여 총열이 과열되거나 탄약을 낭비하는 사태가 벌어지곤 하였다. 하지만 MG 42의 획기적인 쉬운 총열 교 방식과 전장의 거친 환경에서도 끄떡없이 탄 걸림 없이 운영이 되는 신뢰성 덕분에, MG 42는 독일군에서 가장 무서운 병기 중 하나였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묘사된 오마하 해변은 실제 오마하 해변의 길이도 많이 짧았다. 오마하 해변의 실제 길이는 약 250야드, 즉 220 미터의 길이가 되었는데, 오마하 해변에 상륙한 병력들은 박격포와 곡사포의 포격 그리고 MG 42 기관총이 흩 뿌리는 총알 밭을 뚫고 상륙을 하는 공포를 맞이해야 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스팀보트 윌리’ 독일군을 비롯하 레이더 기지에서의 독일군들은 이 MG 42 기관총으로 82 공수사단 병사들을 기습하기도 하였다.
독일군의 지뢰
슈 마인, 슈 지뢰42(schuh mine 42) 는 목재와 합판으로 만들어진 대인지뢰였다. 이처럼 목재나 유리로 만들어진 지뢰들은 금속 탐지기로 탐지가 안 되기 때문에 탐지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이 슈 지뢰 42가 더욱 악랄한 것은 이 슈 지뢰는 발목이나 다리만 날리는 정도의 폭발력을 가지 발목 지뢰로, 일부러 부상자를 만들어서 진격을 더디게 하거나 이 부상자를 돕는 병사들을 노리기 쉽도록 만든 것이다.
글라스 마인 43(glasmine 43)인 슈 지뢰 42와 비슷하지만 유리로 만들어진 지뢰였다.
독일군의 주력 대인 지뢰는 S-지뢰, S-마인(S-Mine / schrapnellmine)으로 이 S-지뢰들은 특이하게도 밟는 즉시 땅에서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공중으로 튀어 올라서 사방으로 폭발과 함께 파편들을 뿌리는 매우 치명적인 지뢰였다.
텔러 마인 즉, 텔러 지뢰(Teller mine)는 대전차 지뢰로 차량이나 전차, 탱크 정도의 무게와 압력을 가해야만 터지는 지뢰였다. 이 텔러 지뢰는 중전차들도 한 번에 날릴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대전차 지뢰였다.
오마하 해변의 주둔 독일군 부대
노르망디 해안 전체를 아울러 가장 전투 경험이 많던 독일 352 보병사단이 어마하 해변을 지키고 있었다. 오마하 해변은 가장 많이 요새화 되었던 해변일 뿐만 아니라 가장 전투력이 높던 독일 군 부대가 배치되어 있던 셈이다.
동부전선에서의 징집병이나 전쟁포로 출신들과 나이 많은 이들이 포진 되어 있던 716 보병 사단 또한 이 오마하 해변에 진주를 하고 있었다. 존 H 밀러 대위는 제임스 프랜시스 라이언 일병을 구출하는 작전을 시행하기 이전에 이 352 보병사단 병력들과 전투를 벌이고 포로들은 29 보병사단의 116연대로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