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 Der Untergang] - 그들은 누구인가 정치인 ep1 - 아돌프 히틀러 하인리히 히믈러 발터 헤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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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Der Untergang] - 그들은 누구인가 정치인 ep1 - 아돌프 히틀러 하인리히 히믈러 발터 헤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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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소설 등 종류를 막론하고, 나치주의(Nazism) 악의 근원을 설명하는 소재로서 무수히 많은 매체에 직간접적으로 등장을 하였다. 마블시네마틱 시리즈(Marvel Cinematic Series)의 퍼스트 어벤저(캡틴 아메리카의 이야기)에 등장한 레드 스컬과 하이드라 조직이나 스타워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은하제국을 예시로 들 수 있다.

 

 

유태인 학살(홀로코스트)이나 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원흉으로 나치즘을 맹신한 사람들이 소위 나쁜 사람들의 집단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바꾸어서 나치즘이란 무엇인가’ ‘나치는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제대로 된 설명을 할 수 있는 이들은 극히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개인의 SNS, 공영방송 등 매체를 막론하고, 개인이나 정치 집단들(이는 놀랍게도 좌익 우익을 가리지 않는다.) 또한 구분 없이 나치즘과 유사한 이데올로기가 아무 거리낌 없이 선전되고 있다.

이에게 나치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묻는다면 분명히 나치즘은 나쁜 사상입니다고 답할 것이다. 자신의 사상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고찰 또한 하지 않으면서 타인들에게 영향을 주는 행위는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나치즘뿐만 아니라 다른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를 이해할 때에도 단순한 선 vs 악의 구도로서만 이해하는 것은 매우 해로운 일이다. 사상의 본질이나 정의에 대해서 살펴보고, 이러한 사상들이 역사적으로 가졌던 의의나 결과들을 곱씹으면서 우리의 미래에 활용을 할 수 있도록 생각을 해야 한다.

 

 

영화 다운폴’, ‘몰락은 나치즘을 표방한 나치정당의 핵심 인물들이 세계 2차대전 패전의 마지막 날들에서 겪었던 사건들을 상세하게 묘사 한 영화이다.

영화에 워낙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건들이 일어나다 보니 영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다면, 보기 불편한 영화일 것이다. 이 글을 통하여 나치즘은 무엇이고, 다른 글들에 걸쳐서 영화 몰락의 핵심인물들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Journal, The Asia Pacific. “Hitler's Dismantling of the Constitution and the Current Path of Japan's Abe Administration: What Lessons Can We Draw from History?” The Asia-Pacific Journal: Japan Focus,  https://apjjf.org/2016/16/Ikeda.html.    Figure   SEQ Figure \* ARABIC  1 https://encyclopedia.ushmm.org/content/en/article/the-nazi-terror-begins

 

나치즘과 파시즘은 무엇인가?

나치즘은 독일어로 Nationalsozialismus라고 하며, 이를 한글로 번역하면 국가사회주의를 의미한다. 나치의 국가사회주의는 반유대주의(Anti-Semitism), 독일민족의 문화적, 인종적인 우월성을 바탕으로, 국가주의와 국가(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강조한 전체주의 사상을 조합한 사상이다.[1] 

나치즘은 파시즘과 완전한 동일한 동의어로 사용되곤 하지만, 파시즘은 나치즘보다 일찍 등장한 사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지만, 완전히 동일한 사상은 아니다. 

 

 

파시즘은 처음으로 독일 제3제국의 동반자였던 베니토 무솔리니가 만든 사상으로, 전체주의와 국가주의를 바탕으로 삼는 사상이다. 

파시즘은 여러 국가마다 다른 형태로 변형이 되었으며, 나치즘 무솔리니의 파시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파시즘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없고, 다양한 국가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파시즘은 발달하였는데, 나치즘은 반유대주의를 특별히 더욱 강조하고, ‘아리아인’, 독일 민족의 인종적 우월성 또한 강조한 사상이었고, 1900년대 초중반 파시즘과 함께 세계를 흔든 사상이었다.[2]

 

 

아돌프 히틀러과 그의 나치당의 성장 과정 -  Adolf Hitler

나치 정당, 독일 국가사회주의 정당(Nazi Party National Socialist German Worker’s Party/ 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 Partei NSDAP)는 사실 아돌프 히틀러가 창당을 하지 않았다.

안톤 드렉슬러(Anton Drexler)라는 사람이 뮌헨에서 처음 나치당을 창당하였는데, 나치정당이 쭉 집권을 한 1930년대 초부터 1945년 몰락하기까지, 안톤 드렉슬러는 주요 직책을 수행하지도 나치당으로부터 피의 숙청 또한 당하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아갔다.

 

Anton Drexler 안톤 드렉슬러

 

1921, 아돌프 히틀러는 나치당의 주류를 장악한 이후, 자신의 연설 능력을 통하여 자신의 입지와 권위를 넓혀갔다. 1923년에는 히틀러와 나치당원들은 바이에른 주 정부를 장악하고자 하였다.

이는 추후 비어홀 폭동(Beer Hall Putsch)이라고 불리며, 비록 비어홀 폭동 자체가 실패를 하였지만, 이는 독일의 보이지 않던 위협이 서서히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3]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의 최악의 독재자로 알려져 독일 태생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실은 오스트리아의 브라나우암인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아돌프 히틀러는 한때는 미술학교에 진학하여 미술가로서의 꿈을 꾸던 예술가였고, 실제로도 그의 그림 실력은 일반인들에 비해 출중하였으나, 결국 히틀러는 미술학교 입학에 실패를 하였다.

서양권에서는 아돌프 히틀러가 미술학교에 입학하였더라면세계는 어떠하였을 까라는 주제로 많은 논의나 일종의 밈(meme)처럼 사용된다.

아돌프 히틀러는 이후 독일의 뮌헨으로 이주를 하였으며, 세계 1차대전에도 참가를 하였다. 세계 1차대전의 패전 이후, 히틀러는 독일 노동자당(안톤 드렉슬러가 설립하였으며, 나치당의 전신이 되는 당)에 가입을 하였다.

 

 

아돌프 히틀러는 발빠르게 자신의 연설능력을 활용하여 당에서의 입지를 넓혀갔으며, 점차 나치즘이라는 자신의 미치광이 사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1923, 비어홀 폭동으로 인하여 아돌프 히틀러는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의 비어홀 폭동은 독일 전체에 이들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9개월 동안만 감옥에서 복역을 하였으며, 그의 자서전인 나의 투쟁 Mein Kampf’. 을 발간하였으며, 이는 독일에서의 베스트 셀러로도 등극을 한다. 나의 투쟁에서 히틀러는 반유대주의(antisemitism), 민족주의의 중요성과 독일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였다.

 

 

세계 1차대전 당시 물론 프랑스나 다른 지방에서는 격렬한 전투들이 벌어졌지만, 독일의 본토에서는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독일의 패전은 독일 본토에 있던 자국민은 왜 전쟁에 졌는지에 대해서 실감을 할 수 없었다.

또한, 패전 이후 설립된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적 능력에 대해서 국민들의 다수가 의문을 품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 패배로 인한 베르사유 조약 체결은 독일 민족의 자존심을 건드렸으며, 경제적 위기인 대공황로 인한 경제악화와 인플레이션 등 사건들에 대한 대응으로 인하여 바이마르 공화국는 많은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아돌프 히틀러가 내세운 나치즘은 매우 달콤한 사과처럼 독일 국민들에게 다가갔고 독일 국민들은 독이 들어 있음을 모른 채 이 독사과의 달콤한 향기에 유혹되었다.

나치당의 인기는 날로 증가하고 있었으며, 1932년에는 나치당은 독일의 제2의 당이 되었다. 정치적으로도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이 입지가 넓어졌다.

1933년에는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의 수상이 되었으며, 같은 해에 나치당이 독일의 유일 당임을 인정하는 수권법 법안이 국회에 통과되었다.[4] 말 그대로 민주주의가 우뢰와 같은 박수 속에서 사라졌다.

 

베르사유 조약에 대한 반대 시위와 수상이 되는 히틀러

 

19346, ‘장검의 밤이라는 사건이 벌어진다. 히틀러는 자신의 개인 친위대 SS(Schutzstaffel),를 동원하여 나치당 내외에서 히틀러에게 반대하는 이들을 무력으로 숙청을 하였다.

SS(친위대)는 히틀러에게만 충성을 하는 개인 경호원 집단이며 많은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이 되는데 이 당시만 해도 나치당 내에서 SS(친위대)는 돌격대(SA, 일명 갈색 셔츠단으로도 불린다)라는 조직보다는 작았다

 

 

. SS(친위대)와는 달리 돌격대(SA)는 규모가 매우 컸으며, 이들은 주로 에른스트 룀이라는 인물이 이끌고 있었다.

에른스트 룀은 한때 히틀러의 친우였지만, 독일의 정통적인 엘리트집단을 받아들이지 않는 바면, 히틀러는 이들을 받아들이고자 하였기에 정치적인 이견으로 인하여 히틀러와 갈라서게 되었고, 장검의 밤 히틀러의 친위대(SS)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장검의 밤 사건 이후,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을 독일의 대통령과 동시에 총통으로서 독일을 이끌어 나갈 것임을 선포한다. (Führer und Reichskanzler)[5] 아돌프 히틀러의 끔찍한 나치즘은 인제 본격적으로 홀로코스트와 같은 끔찍한 사건과 세계2차대전으로 이어지고, 1945년 히틀러의 자살로 인해 막을 내린다.

 

에른스트 룀과 아돌프 히틀러 / 갈색 셔츠단으로도 불리는 돌격대(SA)

 

아돌프 히틀러는 매우 철저한 채식주의자이자 금주가(teetotaler )이었다. 영화 몰락의 장면을 살펴보면, 식사장면이나 알코올을 혐오하는 대사를 여럿 들을 수 있으며, 이는 몰락 이외에도 여러 영화에서 묘사된다.[6]

 

 

하인리히 히믈러 - Heinrich Himmler

나치의 독일 제3제국의 2인자는 하인리히 히믈러였다. 하인리히 히믈러는 1923년 나치당에 가입을 하였으며, 비어홀 폭동 당시 히틀러와 함께 에른스트 룀과 헤르만 괴링과 같은 이들과 함께 폭동을 주도한 주모자 중 한 명이었다.

하인리히 히믈러 또한 독일 민족의 우월성과 타 민족의 열등함에 대한 연설로 당내에서 입지를 다졌다.

 

 

1929, 하인리히 히믈러는 히틀러의 친위대, SS(Schutzstaffel)의 최고 계급인 제국지도자(Reichsführer SS)로서 임명된다. 이는 1945년 히믈러가 자살을 하기까지 유지가 되며, SS(친위대)의 최고 결정권자로서 SS의 끔찍한 만행들에 대한 많은 책임이 히믈러에게 있었다.

비록 제국지도자라는 오도된 지위였지만, 이때만 해도 SS 200여명 규모로 몇만 몇십만 규모의 에른스트 룀이 이끄는 돌격대(SA)에 비하면 매우 작았다.

하지만 점차 SS(친위대)는 나치당의 주류조직으로 성장을 하였으며, 나치당에 대항하는 이들을 제압하는 정치깡패집단와 히틀러의 개인 경호대로서 활약을 하였다.

 

 

1931년에는 추후 나치당의 모든 정보 수집과 방첩을 담당할 악명 높은 SD(제국 보안국/SicherheittsDienste-SD) 가 설립되었고, SD는 해체가 되기까지 인종문제를 비롯한 모든 나치당의 정치적인 적들에 대한 정보전을 실시하였다.

 

 

같은 해 1931년에는 민족과 정착 기구 {Race and Settlement Office (Rasse-und Siedlungsmat)}와 같은 기구가 설립되어 순혈주의 민족의 관리를 위한 기구가 추가되었다. 히믈러는 점차 커지는 SS의 지도자로서 1933년에는 50,000명의 단원들을 거느렸다.

 

SS의 단원들 / 히믈러의 '뇌'로도 불렸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SS의 수장급 중 최초로 암살당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당시, 히틀러는 독일의 정통 엘리트와 기업가들과 같은 우익 세력을 품고자 한 반면,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사회주의 성향과 인민의 혁명을 중시하여 정통 엘리트와 우익세력들을 부정하는 에른스트 룀 사이에서 매우 큰 갈등이 있었다.

결국 히틀러는 SS(친위대)에게 명령을 내려 1934장검의 밤을 통해 에른스트 룀을 포함한 자신의 정치적인 적들을 물리적으로 제압하였고, 히믈러의 SS는 자신들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데일리 익스프레스에서 장검의 밤 당시 출판한 신문 기사

 

이 시기를 전후로, SS(친위대)는 더욱 많은 권한을 얻게 되어서 독일의 경찰까지도 SS를 중심으로 중앙집권화 되어서 하인리히 히믈러는 독일의 경찰국장직도 겸하였다. 또한 집단 수용소(인종 및 정치 사범들을 가두는)들 또한 SS(친위대)를 통하여 체계적으로 관리가 시작되면서, 히믈러의 권한은 더욱 확대되어만 갔다.[7] 

추후 하인리히 히믈러는 최종해법 ‘Final Solution’으로 일컬어지는 유태인 절멸 계획에도 사상적으로 그리고 SS의 수장으로서 관여를 하게 된다.

친위대(SS)는 규모가 커져 일반 친위대(Algemieine SS)와 무장 친위대(Waffen SS)로 나뉘게 된다. 무장친위대(Waffen SS)는 일반 독일 국군과 달리 독일 민족/인민의 군대로서 정치적으로도 무장이 되었으며 독일 순혈나치 광전사의 개념으로 창설되었다. 실질적으로 히틀러 휘하의 친위군대가지 생긴 격이다.

물론 이 개념은 세계 2차대전이 진행되어 독일의 사정이 급해지면서 순혈주의나 순수독일주의와 같은 개념들은 무너졌다. 또한, 히믈러 밑에는 명목상 존재하였으며, 실질적으로는 국방군 소속으로 무장친위대는 전투를 치렀다.[8]

 

 

1944작전명 발키리로도 잘 알려진 히틀러 암살 사건이 일어난 이후,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을 둘러싼 군인과 장성들에 대한 의심이 더욱 증폭하면서, 북라인 집단군의 사령관으로 히믈러를 임명하였다.[9] 

장교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히믈러였지만, 자신의 친위대의 수장으로서 친위대가 가지는 히틀러에게 가진 의미를 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런 면에서 보면 하인리히 히믈러는 전지전능한 인물로 보이지만, 히믈러는 알베르트 슈페어, 마르틴 보어만이나 헤르민 괴링과 같은 이들과의 정치적인 경쟁에서 많이 밀렸으며, 주어진 지위만큼의 막강한 권위를 많이 휘두르지는 못하였다.

 

 

19454월 히믈러는 스웨덴의 적십자를 통하여 연합군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협상을 하고자 시도를 하였지만 실패하고 히틀러에게 발각되어 히틀러는 모든 지위에서 히믈러를 파면한다.

이는 영화 몰락에서도 그려지며 히틀러의 오랜 지지세력이었던 SS의 수장의 이러한 행동에 히틀러는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인리히 히믈러는 자신의 행동들에 대한 판결을 두려워한 나머지, 일반인으로서 위장을 하였지만 들키게 되어 뉘른베르크 국제 전범 재판에 들어서기 이전, 아무도 모르게 숨겨 놓은 시안화(청산가리)캡슐을 물고 자살을 하였다.

 

헤르만 페겔라인과 하인리히 히믈러 ,  그리고 히틀러

 

헤르만 페겔라인은 1945년 당시 하인리히 히믈러의 연락장교였다. 히믈러의 배신 소식에히틀러가 페겔라인을 그토록 찾은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다

 

발터 헤벨(Walther Hewell)

발터 헤벨(Walther Hewell)은 독일의 외교관이었으며, 나치당의 초창기 당원 중 한 명이자 아돌프 히틀러와 가까운 친구로도 알려진 인물이다. 비어홀 폭동이 일어난 당시, 히틀러가 수감되었을 때 헤벨 또한 같이 수감이 되었다.

헤벨은 풀려난 이후,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에서 잠시 커피 영업원으로서 일을 한다.[10] 비어홀 폭동으로 나치당의 주요 인물들이 수감된 이후 있었던 나치당의 정치 공백은 히틀러가 돌아온 이후 서서히 채워졌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수상이 되면서 발터 헤벨 또한 독일로 복귀를 하여 외교 방면에서 자살을 하기까지 일을 하였다. 헤벨은 스페인의 마드리드(프랑코의 집권 전후)에서 외교부에서 업무를 하고, 1939, 체코의 병합 전후로 체코 대통령과의 만남 주선 등 활약을 하였다.

추후, 헤벨은 공식적인 지위는 없는 특별 대사로서 활약을 하며, 추후 전범으로 처형이 될 독일의 외교부 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의 연락관으로서 외교부 업무를 지속하게 된다.

194552, 베를린 방어군 사령관 헬무트 바이들링이 아돌프 히틀러의 죽음과 베를린의 모든 교전을 중단할 것을 방송으로 공표한 같은 날, 헤벨은 시안화 캡슐(청산가리)를 무는 동시에 권총의 방아쇠를 당겨 자살을 한다. 이는 영화 몰락에서 똑같이 재현된다.[11]

 


[1] “Totalitarianism and Expansionism.” Encyclopædia Britannica, Encyclopædia Britannica, Inc., https://www.britannica.com/event/Nazism/Totalitarianism-and-expansionism.

[2] Waxman, Olivia B. “What Is Fascism? What to Know about Its Brutal Origins.” Time, Time, 22 Mar. 2019, https://time.com/5556242/what-is-fascism/.

[3] “Nazi Party.” Encyclopædia Britannica, Encyclopædia Britannica, Inc., https://www.britannica.com/topic/Nazi-Party.

[4] Michal. “How Did Adolf Hitler Happen?: The National WWII Museum: New Orleans.” The National WWII Museum | New Orleans, The National World War II Museum, 22 June 2017, https://www.nationalww2museum.org/war/articles/how-did-adolf-hitler-happen.

[5] “Dictator, 1933–39.” Encyclopædia Britannica, Encyclopædia Britannica, Inc.,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Adolf-Hitler/Dictator-1933-39.

[6] “9 Things You Might Not Know about Adolf Hitler.” Encyclopædia Britannica, Encyclopædia Britannica, Inc., https://www.britannica.com/list/9-things-you-might-not-know-about-adolf-hitler.

[7]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https://encyclopedia.ushmm.org/content/en/article/heinrich-himmler.

[8] “SS.” Encyclopædia Britannica, Encyclopædia Britannica, Inc., https://www.britannica.com/topic/SS.

[9]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https://encyclopedia.ushmm.org/content/en/article/ss-key-dates?series=27.

[10] Peoplepill.com. “About Walther Hewel: German Diplomat (1904 - 1945): Biography, Facts, Career, Life.” Peoplepill.com, https://peoplepill.com/people/walther-hewel.

[11] (john@spartacus-educational.com), John Simkin. Spartacus Educational, Spartacus Educational, https://spartacus-educational.com/Walter_von_Hewell.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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