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친위대의 기원(Waffen SS)
아돌프 히틀러는 명목상이긴 하여도 압도적인 지지로 투표로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총통이 되었지만 명목상 정치적으로 중립인 독일군에 대항하여 오로지 자신과 나치당에만 복종하는 사병보직이 필요하였다.
친위대(SS, Schutzstaffel)의 수장 하인리히 히믈러 또한 자신의 휘하에 군사조직을 두어 더욱 자신의 입지를 확대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이러한 일환으로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 당시 SS 친위대 소속의 분견대 SS-Verfügungstruppe (SS-VT) 와 아돌프 히틀러의 총통 경호대 (Leibstandarte SS Adolf Hitler) (LSSAH)가 군사작전 및 민간인 학살에 투입되었다.
이들은 아직 군사적으로도 갖추어지지 않아 졸전을 펼치고 흉악한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등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지만 이들은 무장 친위대의 바탕이 된다.
독일의 프랑스 침공 시점에서 드디어 무장친위대(Waffen SS)가 정식으로 창설되어 무장친위대 1사단 LSSAH, 무장친위대 2사단 다스 라이히(Das Reich) 그리고 무장친위대 3사단 토텐코프(Totenkopf)가 최초로 창설된 뒤 프랑스 침공에 참가한다.
무장친위대는 나치당의 준군사조직으로서 독일 국방군의 육군, 공군, 해군을 제외한 제4의 군으로서 나치당의 이념으로 싸우는 정치적 색을 띤 무장조직이었다.
Waffen SS는 말 그대로 독일어로 전투하는 친위대 라는 뜻이었으며 이들은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의 통제를 받으며 전선에서 전투를 하였다. (이들은 히틀러의 직접 지시로 독일 국방군에 그때 그때 배속되어 전투를 치렀다.)
제 2 무장 친위대 사단 다스 라이히 (Das Reich)
초창기의 친위대의 분견대인 SS-Verfügungstruppe (SS-VT)에서 분화되어 1차 세계대전도 치른 예편 3성 장군 파울 하우저(Paul Hauser)가 최초 사단장을 맡아 제2SS 사단 다스 라이히를 지휘하였다.
파울 하우저는 다스 라이히 사단뿐만 아니라 무장 친위대 전체의 창설에 관여하여 이들의 훈련부터 군사조직화를 모두 도맡아 단순한 정치 깡패들에서 전 유럽이 두려워한 준군사조직으로 무장친위대를 탈바꿈한 장본인이었다. (물론 무장친위대는 악명에 비해 졸장들과 졸전도 많았다.)
제 2nd SS 사단 다스 라이히는 프랑스 침공, 유고슬라비아 합병, 모스코바 전투와 쿠르스크 전투와 같은 주요 동부전선의 전투에도 참가를 하였고, 무장친위대 사단 중에서도 뛰어난 전투력으로 정평이 났다.
이들은 오버로드 작전 노르망디 상륙 당시 프랑스 남부의 몬타우반(Montauban)에 배치되어 있던 상태였다.
실제 역사속에선 노르망디 상륙작전 3주 경과 후에야 2SS사단 다스라이히는 제 17SS사단 괴츠 폰 베를링헨(17th SS Panzergrenadier Division Götz von Berlichingen)과 함께 연합군에 반격을 꾀했다가 기갑전력 대부분을 상실하고 프랑스에서 후퇴한다.
역사적 고증으론 밀러 대위의 레인저 대원들과 101 공수사단 소속 공수대원들과 라이언 일병은 라멜의 다리에서 2SS 무장친위대 사단 다스라이히 보단 12 SS 무장친위대 사단 히틀러 유겐트와 마주했어요 할 것이다
.
하지만 이 12SS 무장친위대 사단 히틀러 유겐트는 또 어린 청소년들이 전력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주제를 희석할 가능성이 높아 2SS 무장친위대 사단이 그냥 영화적 허용으로 등장하였을 것이다.
이 당시 2SS 무장친위대 사단에는 티거 전차들도 배속되지 않았고 대부분 판저 4호 전차와 판터 5호 전차들만 배속되어 있기도 하였다.
독일 국방군 베어마흐트(Wehrmacht) 와 무장친위대(Waffen SS)의 비교와 차이점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군을 전체로 묶어 명목상 최도 사령부인 베어마흐트(Wehrmacht) 즉 국방군이란 단어가 고유 명사화 되었다. 무장친위대는 국방군 소속은 아니었어도 히틀러의 직접 명령에 따라 국방군 밑에서도 작전을 수행하곤 하였다.
하지만 이 둘은 별개의 조직으로 무장 친위대는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의 직속 준군사 조직인 반면 국방군은 독일 국가를 섬기는 군이었고 명목상으론 정치적 중립이었다. \
무장 친위대는 군사 작전뿐만 아니라 나치당이 정치적 이념적 목적을 위한 정치적인 작전들도 수행을 하였다. (물론 이에 협조한 국방군도 협조를 거부한 국방군도 있다.)
무장친위대 자체가 나치당이 군부 조직을 견제하기 위하여 창설한 조직이었기에 이들은 더욱 가중한 처벌을 전후에 받게 되며 정식 교전 조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였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거 업햄이 구해준 뒤 밀러 대위를 죽인 일명 스팀보트 윌리 독일군 병사는 독일 육군 국방군 소속 군인이었으며 스탠리 멜리쉬 일병을 대검으로 살해하고 울고 있는 업햄을 모른 척하고 살려준 병사는 무장친위대 소속의 다른 인물이다.
무장친위대와 국방군의 몇 가지 구분법
1.무장친위대원들의 전투모에는 죽음의 해골 토텐코프(Totenkopf) 와 칼라에 SS 룬 문자가 존재하였다.
무장친위대의 전투모엔 죽음의 해골 즉 토텐코프가 있었으며, 목 칼라에는 번개모양으로 보이는 SS 룬이 찍혀 있었다. 또한 이 목 칼라의 계급을 통해 무장친위대와 국방군 구분도 가능하였다.
독일의 국방군은 전차 승무원을 제외하곤 죽음의 해골 표식이나 SS 론 글자가 군복에 존재하진 않았다.
2. 독일 국방군과 무장친위대는 다른 계급 체계를 가졌다. 이는 둘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지표이다. 무장친위대의 장교급은 목의 칼라에 떡갈나무 잎이나 네모의 개수로 계급을 표현하였다
3. 독수리와 하켄크로이츠 상징의 위치
무장친위대원들은 좌측에 독수리와 하켄크로이츠 나치당의 상징이 위치한 반면 독일 국방군은 이 독수리와 하켄크로이츠 나치당 상징이 가슴 쪽에 위치하였다.
101st SS 중전차 대대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등장한 티거 전차는 1 SS 무장친위대 기갑군단의 표식을 하고 있지만 이보다는 101 SS 중전차 대대 소속이었을 확률이 높다. 역사로 보면 당시 2SS 무장친위대 사단에는 티가 전차를 포함한 중전차들은 배속이 되지 않은 채 프랑스에 배치되어 있었다.
사실 티거 전차와 같은 전차들은 독일 군과 무장친위대 입장에서 매우 소중한 군사적 자산이었기에 이들은 사단에 배속하지 않고 중전차들을 모아서 중전차 대대 형태로 군단 단위(3성-4성장군 급, 독일은 군쳬계가 달라 3성 장군이 우리 나라 기준 2-3성 장군 사이 지위를 가졌다.)에 직할대대로 존재하였다.
따라서 중전차 대대들은 직할 대대로 군단 단위에서 통제를 받았으며 소대나 중대 단위로 필요한 부대에 파견형태로 작전한 것이다. 101 무장친위대 중전차 대대(101st Heavy SS Panzer battalion)는 1943년 7월에 창설되어 동부전선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101SS 중전차 대대의 각 중대는 러시아와 프랑스에 나눠져 배치가 되어 있었는데 프랑스에 배치 되어 있던 101st SS 중전차 대대소속의 티거 전차들은 6월 12일 쯤 되어서야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상륙한 연합군들에 대한 반격을 시작한다.
이 중에는 101무장친위대 중전차대대 2중대의 중대장 미하엘 비트만(Michael Wittmann)또한 있었다.
미하엘 비트만과 그의 티거 전차 승무원들은 빌러스-보카쥬(Villers-Boccage) 전투로 단숨에 악명 높은 니거 전차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허지만 101 SS 무장친위대 중전차 대대 소속 전차들은 더 이상 프랑스에서 버티질 못하고 잔존 세력들은 프랑스에서 후퇴하게 된다. 후에 101 SS 중전차대대는 501 SS 중전차대대로 재편되고 이들은 티거 II 전차들을 새롭게 수령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전쟁영화에서 무장친위대가 많이 강조된 이유
무장친위대는 나치당이 ‘천년 제국'(‘thousand-year Reich’)을 꿈꾸면서 초기엔 이상적인 독일인들만 지원할 수 있는 나치당이 꿈꾼 이상적인 ‘국민의 군대'였다.
하지만 이 정치적인 광전사들은 독일의 패전이 짙어짐에 따라 사상률도 높아서 결국 다양한 인종들도 받아들이는 등 살기위해 버둥치게 되었다. 독일의 군부도 여러 전쟁범죄와 인류를 향한 범죄에 가담하였지만 무장친위대는 더더욱 전쟁범죄롸 인류를 향한 범죄에 많이 가담하여 악명이 높았다.
무장친위대는 정치적 성격도 강하여 유독 치열한 전투에도 많이 투입되었지만 이들은 유독 저돌적이고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성격이 강하여 많은 연합군들이 질겁을 하였고 소련군에서는 국방군보다도 무참하게 무장친위대원들을 가혹하게 대하였다.
그래서 많은 2차세계대전 영화에서 무장친위대와 일반 친위대를 최악의 적수로 두는 편이 많았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는 이런 무장친위대의 가혹함 보다는 이들도 그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살아가는 인간임을 표현하여 전형적인 무장친위대의 이미지를 사용하진 않았다.
(이는 사투를 벌인 끝에 미안하다며 어쩔 수 없다며 멜리쉬를 대검으로 살해한 이후 쭈그러져 있는 업햄을 보고 무언가를 느끼로 그냥 지나치는 무장친위대원으로 묘사된다.)